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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랑 내가 식구?”…과학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by 사랑해,태진 2013. 2. 23.

“꽁치랑 내가 식구?”…과학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 해피패밀리(고종석 著, 문학동네 刊)

2013년 02월 23일

“꽁치나 장미꽃이 우리 식구라구?”

“그럼, 그런 것들도 우리랑 조상이 똑같거든. 지현이의 엄마가 이 할미지? 그런데 이 할미의 할미의 할미의 할미가 있을 거 아냐. 그런 식으로 수천만 명의 할미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할미를 따라 올라가면 하나의 조상이 나오지. 그 조상은 우리 지현이의 조상이기도 하구. 소나무의 조상이기도 하지.”

“하느님을 말하는 거야?

“응. 하느님일 수두 있구. 아니, 하느님은 아닌데, 그래 하느님이라구 하자. 아무튼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은 다 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단다.”

“꽁치랑 내가?” (중간생략)

그렇지만 꽁치랑 내가 식구라구? 어떡하지……나 꽁치 좋아하는데…… 



작가 고종석이 최근에 펴낸 소설 ‘해피패밀리’를 통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위 대화는 소설 중에서 2006년에 태어난 한지현과 외할머니 강희숙 간 오간 내용이다. 식구 즉 가족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한 지현이 아빠와 엄마, 외할머니에게 질문하는데, 아빠와 엄마의 대답은 사회문화적인 영역에 그쳤지만 외할머니의 대답은 이 질문을 과학의 영역까지 펼쳐친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게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진화론적인 이야기는 사회문화적으로 더 넓은 의미를 담게 된다. '소설을 과학책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들을 위해 미리 '이 소설에는 과학적 개념인 진화론의 내용이 깔려있다'라고 미리 얘기해두고 싶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개념에 대해 인문학적으로나 자연과학적으로 폭넓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각각의 인물이 독백하는 동안 유전이나 진화심리, 인류학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더 큰 맥락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며 다양한 학문 분야를 건드린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족이란 사람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것이니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모두 아우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에 대해

사전에서 가족은 ‘부모, 자식, 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라고 나온다. 다른 야생동물들도 생물학적으로 이어져 무리를 이루고 사는 경우가 있지만, 인간이 이야기하는 가족과는 다른 의미다. 인류가 이루고 사는 가족은 그저 혈연으로만 엮인 게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복잡한 기능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살만한 중산층 집안’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원하다. 하나뿐인 아들의 생일날에 온 가족이 모이지도 않고, 아들은 부모와 대화하기도 꺼린다. 모두가 칭찬하는 며느리를 통해 겨우 가족의 유대가 이어진다. 10명의 인물의 독백 속에서 가족은 서로를 부모나 자식, 남매 등으로 부르는 게 전부인 껍데기처럼 보인다. 부모의 유전자를 나눠가졌다는 생물학적인 의미만 남아있는 듯 앙상한 관계다.

주인공들은 또 가족이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거나 실제로 이용하는 속물적인 모습도 드러낸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적인 계층을 옮기려는 시도도 간간이 엿보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족은 더 큰 공동체에서 활동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는 점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덕분에 가족은 처음에는 생물학적으로 엮었지만 사회문화적으로 더 중요해서 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마저 든다. 명문대를 나온, 좋은 직업을 가진, 안정된 모습을 갖춘, 그런 가족이라는 게 남의 기준에서 더 중요하고 출세한 가족원이 있다는 게 살아가기 유리해진 세상을 보란 듯이 써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책 띠지에 ‘날카롭고 서늘하고 우아하다’고 써 붙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굳이 이들을 비판하거나 욕하려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욕망을 담담히 서술한다. 인간이 본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임을 차분히 드러낼 뿐이다. 

●진짜 ‘해피패밀리’를 위해

사실 소설 그 자체를 본다면 별다른 장 구분 없이 저마다 솔직한 이야기를 펼치는 구성이라 하나의 사건을 향하는 맛은 없다. 그러나 속마음을 보여주는 구성을 통해 가족의 정서적 기능, 즉 사랑과 애정을 공급하는 부분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남매가 서로를 아끼는 장면 등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류만이 가진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이런 정서적 기능에 힘입어 지금의 풍요로운 세상을 일궜으리라.

평범한 가족에게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이 가족은 곧 진짜 행복한 가족이 될 거라 믿는다. 한지현의 엄마이자 이 집안의 며느리인 서현주의 밝음과 튼튼한 낙관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 스스로는 ‘지혜로운 위선’이라 부르지만 이는 현재 만들어내는 겉보기 평화를 행복으로 진화시킬 것이다. 

소설 밖에서는 ‘꽁치도 식구가 될 수 있다’는 지현의 깨달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뭉쳐지는 상상을 한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먼 가족이라면, 그런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진짜 ‘해피패밀리’가 되지 않을까.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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