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농부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지는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나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이다. 윤 초시네 여자아이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안 그래도 흰 얼굴을 가진 소녀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선 비를 피해 근처 수숫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소녀를 웃게 하려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시작한다.

“비가 참 많이 내린다. 이 많은 비가 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

소녀가 입을 열었다. 비 내리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다. 다행이 어제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다.

“비의 고향은 바다야. 바닷물이 증발해서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만들어지고, 구름에서 비가 만들어지는 거지.”
“그렇구나. 그럼 바다는 처음부터 있었던 거야?”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바다가 없었대.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매우 뜨거운 상태였으니까 물이 없었을 거라고 해. 지구가 태어난 뒤로 시간이 흐르면서 화산활동이 생겼고, 이때 많은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단다. 수증기가 다시 비로 변해 내리면서 지구도 식었고, 바다도 만들어졌대.”

“아, 그럼 바다보다 비가 먼저인 셈이네.”
“원래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바닷물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다시 비로 내리는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어.
“비가 내리는 건 사람의 삶과도 비슷하구나. 사람도 매일 학교나 일터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잖아.”

소녀가 잠시 생각에 잠겼고, 대화가 끊어진다. 주룩주룩 소나기 내리는 소리만 가득한 수숫대 안에서 나는 다시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소녀를 웃게 만들고 싶었으니까.

“구름에서 어떻게 비가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지 않니?”
“응, 이야기해 줘!”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이나 아주 작은 얼음덩이(빙정)는 수백만 개가 합쳐져야 빗방울 하나 정도 크기가 돼. 또 일단 구름이 만들어지면 구름 안의 공기는 계속 위로 올라가려고 해. 반대로 구름 속의 작은 물방울은 무거워지면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고 말이야.”

“그러면 물방울끼리 서로 부딪힐 수도 있겠네?”
“맞아. 물방울끼리 부딪히면 합쳐지는 일도 생기는데, 이때 물방울이 커져서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지.”
“눈?”

눈이라는 이야기에 소녀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래. 구름속의 작은 물방울들은 구름의 온도에 따라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해.
“정말? 눈을 만드는 구름이나 비를 만드는 구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응, 더운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구름의 온도는 0℃보다 높아. 이렇게 온도가 높은 구름에는 작은 얼음덩이(빙정)가 없단다. 이런 구름을 ‘따뜻한 구름’이라고 불러. 따뜻한 구름 안에서는 여러 크기의 물방울이 서로 부딪히고 합쳐진단다. 물방울 크기가 충분히 커지면 비가 돼서 땅으로 떨어지게 되지. 이렇게 ‘따뜻한 구름’에서 비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병합설’이라고 불러. 아프리카 같은 열대 지방에서는 ‘따뜻한 구름’만 있기 때문에 눈이 내리지 않고 비만 내린단다.”

“그럼 눈은 ‘차가운 구름’에서 만들어지는 거야?”
“맞아! 우리나라 겨울에 생기는 구름이나 시베리아 같은 지방의 구름이 ‘차가운 구름’이지. 이 구름의 온도는 0℃보다 낮아. ‘차가운 구름’의 아랫부분은 작은 물방울로 이뤄져 있지만, 윗부분은 작은 얼음덩이(빙정)로 이뤄졌단다. 중간 부분에는 작은 물방울과 얼음덩이가 섞여 있고 말이야.”

“얼음덩이가 있다는 게 ‘따뜻한 구름’과 다른 점이구나.”
“그래. ‘차가운 구름’ 속에 있는 물방울이 수증기가 되면 얼음덩이에 달라붙게 돼. 그러면 얼음덩이가 점점 커진단다. 이때 무거워진 얼음덩이가 중력을 받아서 아래로 내려오면 눈이 되는 거야. 물론 눈이 내리는 지역의 온도가 높으면 녹아서 비로 변하기도 하지.”

내 이야기가 끝나자 소나기를 퍼붓던 하늘이 맑아졌다. 소녀의 얼굴에도 하늘빛처럼 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생각해보니 오늘 내린 소나기는 ‘따뜻한 구름’이었겠다. 이번 여름엔 ‘따뜻한 구름’도, 따뜻한 친구도 모두 만난 셈이네. ‘차가운 구름’이 눈을 내릴 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겠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오는 동안 차가운 구름에서 하얀 함박눈이 쏟아져 내릴 겨울을 상상하며 소녀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1. 모르세 2011.10.08 22:50 신고

    오랜만에 들러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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