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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영화관

콩가루도 뭉치면, <좋지아니한가>

by 사랑해,태진 2010. 6. 19.

1. 감독이 부러웠다, 얼마나 좋을까.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하기 시작한 지는 고작 5년 정도. 따라서 과거 화려한 헐리우드 배우나 감독에 대해선 잘 모르며, 딱히 기억에 남는 장면도 없다. 대신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보게 된 영화들에 대해선 최대한 느끼고 즐겼다. 물론 대부분 국내산이며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보았으므로 감상의 폭이 좁기는 할 터이다. 그렇게 짧은 기간 좁은 폭의 영화들을 보았음에도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감독은 참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저런 이야기를 만들고, 필름에 담고, 찬찬히 정리하면서 감독은 적어도 수백 번 정도 외치지 않았을까, “영화를 만드니 좋지 아니한가!”라고.

특별하게 큰 줄기의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하나씩 가지치기하는 에피소드들은 굵은 감동 이상의 잔재미를 담고 있으며,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 또한 쫀득한 맛을 더해준다.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러티브의 전달을 위해 애쓰지 않아도 좋고, 인물들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편집을 고민할 수 있어서 좋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꿈꾸는 세상에 대해 표현할 수 있으니 좋았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처럼 천재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은 참 행복한 감독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신나게 하고 있으니 좋지 아니할까?


2. 밥통과 커피메이커
솥과 뚜껑이 분리되어서 허리띠로 묶지 않으면 밥알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밥통, 그 모양새는 주인공 가족의 모습을 닮았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허리띠가 없으면 사방으로 튕겨져 제각각의 삶을 살 것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달그락 거리는 숟가락이나 ‘물은 셀프야’ 이상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라고 노래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십자인대 파열로 입원했던 엄마의 커피 타령으로 집에 최신형 커피메이커가 들어온다. 밥통의 자리를 떡 차지한 녀석 덕분에 밥그릇, 깨진 머그잔 등에 커피를 따른 가족들은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때마침 일어난 정전은 역사적인 티타임에 찬물을 끼얹었지만 시도만으로도 가족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니까.


늘 살기 위해 밥을 함께 먹었지만, 소통은 부족했던 가족에게 커피라는 매개체가 생겼다. 이제 용선이가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왜 한 집에 모여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밥과 커피를 마시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까.


3. 있는 그대로, 지금 그대로 -
아빠도, 엄마도, 용선이도, 용태도, 이모도, 그리고 용구도 각자의 삶이 있다. 가족이라서 구속할 필요도, 모든 것을 알고자 파헤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들이 힘들고 지칠 때 가만히 손을 잡고 믿음과 용기를 주는 존재들이 되면 된다. 무덤덤하지만 언제나 내 편인 그런 사람들, 그것이 가족 아니던가. 있는 그대로, 지금 그대로 - 뒷면은 보여주지 않는 달처럼 다른 이의 앞면만 보면서 - 그렇게 살면 좋지 아니할까, 행복하지 아니할까? 영화 내내 신나게 웃고, 즐겁게 느꼈다. 참 부러운 감독님, 쌩유!


<마라톤>을 만들었던 정윤철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가족'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도 콩가루 가족인데도, 이렇게 무겁지 않게 그릴 수 있다니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영상에 담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감독님이 여전히 참 부럽다. / 파란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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