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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영화관

아름다운 공포영화, <기담> … "쓸쓸함이 진짜 공포다"

by 사랑해,태진 2010. 6. 22.

선물
무지 오랜만에 홀로 극장을 찾았다. 졸업 2주년을 기념해서, 세 살을 맞은 나를 축하하며, 내가 나에게 좋은 영화 한 편 구경시키고 싶었다.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고른 영화, [기담]. '1942년 경성 안생병원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 셋'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좋았던 영화.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만났다. 한국영화 위기론아, 훠이훠이 물렀거라.


사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봉인된' 소녀와 묵묵히 외로웠던 의대 실습생, 박정남. 새 아빠를 사랑한 소녀와 그녀의 담당 의사, 이수인. 그림자가 없는 아내, 김인영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의사, 김동원. 이 주인공들은 모두 사랑에 목마른 존재들이다. 공허한 정남의 마음에 싸늘한 시체가 들어 온 것도, 온 가족이 죽어 버린 소녀에게 의사의 손길이 각별했던 것도, 그림자가 없는 죽어버린 아내지만 곁에 두고자 하는 동원도 모두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가지의 기이한 이야기 속에 필연적인 사건 전개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 ‘사랑’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놀라운 어떤 이야기, 그것이 바로 [기담]이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 그것에 대해 영화가 당신에게 묻는다. 사랑을 좇아 할 수 있었던 무한한 일들, 그것들이 줬던 행복과 고통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기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사람

영화 속 영혼들은 말이 없다. 정남이 만났던 소녀의 영혼, 소녀가 만났던 엄마, 새 아빠, 할머니의 영혼은 소리는 있을지언정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말을 한다. 정남도, 소녀도, 수인도, 인영도, 동원의 모습을 한 인영도 모두 말을 한다. 그들 모두는 마음을 표현하고 뜻을 전달하려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귀신이 되었다고 해서, 육신이 없다고 해서 표현할 마음도, 전달할 뜻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혼이 단지 사람들을 놀래려는 의도로 세상에 남았다고 한다면 그 존재의 가벼움을 어떻게 참을 수 있으리오.

결국 말이 없던 귀신들은 사람의 마음이 불러 낸 허상들이다. 우물에 빠진 수인이 살 수 있었던 마음의 힘이 바로 형님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정남과 사랑했던 소녀 귀신은 그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한 존재였고, 소녀가 만났던 엄마, 새 아빠, 할머니는 소녀의 죄책감이 스스로를 꾸짖는 도구였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영혼을 작동시키는 주체마저도 인간이다. 영혼마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쓸쓸하니까.


쓸쓸함
쓸쓸함이 인간에게 주는 공포. 인영이 혼자 했을 ‘그림자 놀이’를 떠올리며 검은 나비가 품었을 한에 대해 생각한다. 도저히 믿기 싫었을 동원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믿어야만 하는 쓸쓸함. 어쩌면 그런 것들이 영화 전체의 기술적 공포보다 더 커다란 두려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정전이 된 병원에서 촛불을 하나씩 나누어 들고 걸어가던 수인, 인영, 정남의 얼굴에 비치던 노란 생명의 불빛이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몫의 촛불을 지켜야 하는 세상, 그래서 쓸쓸하지만 그래서 도전할 만한 이곳에 슬픈 우리가 존재한다.

사랑이란, 사람이란, 그리고 쓸쓸함이란 것에 대한 슬픔이 있어서 여느 공포 영화보다 괜찮은 영화, [기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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