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지구의 정복자 | 에드워드 윌슨 

수학이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라 과학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런 나를 과학의 세계로 이끈 책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다. 이 책에는 진화가 인간이나 인류 단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벌어진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들어 있었다.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고,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혈연관계에 있는 남을 돕는 성향이 나타난다는 논리였다. 불편했지만 그럴 듯 했다. 이 논리에 이끌려 과학기자가 됐고 한참 과학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일반인으로 돌아올 즈음 서점에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이 등장했다. 시뻘건 띠지에 “‘이기적 유전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명한 문구를 써놓은 터라 놀라서 책을 펼쳤다.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진화시킨 주된 힘이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신체적 약점이 많은 인류가 오늘날까지 진화한 비결은 역할을 나누고 소통하고 돕는 고도의 사회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개인으로 봤을 때 이기적인 성향은 당장의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집단 전체로 보면 이타적 성향을 가진 자가 많아야 전체적인 생존과 번식에 덕이 된다. 그러니 이기성과 이타성이 여러 환경에서 적절하게 선택돼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타적 성향이 인류를 진화시켰다는 대목에 한참 동안 눈이 머물렀다. 누구를 위하고 돕는 게 지금의 인류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니 뭉클해졌다.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먼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많이 나누고 돕고 마음을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  박태진 評

<PAPER> 2014년 4월호 '클립보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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