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뼈 연약한 살 속으로 숨다

 

가을바다 속은 두족류(頭足類) 세상입니다. 겨울을 앞두고 열심히 먹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오징어나 주꾸미가 지천에 널려 있거든요. 뼈가 없이 부드러운 살로 이뤄진 연체동물들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닙니다. 그 유연한 몸놀림을 보노라면 우리의 뻣뻣한 몸이 조금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딱딱한 뼈들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움직일 수 없고, 잘못 움직이면 관절이 어긋나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뼈는 우리가 움직이는 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입니다. 우선 등뼈와 다리뼈는 지구 중력을 이기고 땅 위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만약 뼈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렁이나 거머리처럼 온몸을 땅에 붙인 채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들은 뼈를 부드러운 근육 속에 감추고 있는데요. 근육이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나오는 힘을 받아 뼈를 움직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서고, 걷고, 달릴 수 있습니다.

 

유연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관절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했습니다. 대퇴골이나 정강이뼈, 손가락 뼈 등은 여러 개의 작은 뼈로 이뤄져있어서 유연하게 구부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근육이지만 사실 근육은 단단한 뼈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뼈는 외부의 힘을 이기고,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근원입니다.

 

단단한 뼈는 원칙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데 맞춰야 한다는 건 우리에게 제한이나 제약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단하게 서 있는 기준은 오히려 더 큰 효율을 만들어 냅니다. 뼈가 있어 똑바로 서고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은 질서를 만들고, 질서가 있어 세상이 원활하게 움직입니다.

 

포유동물처럼 뼈가 근육 안으로 들어간 내골격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얼룩말 같은 포유류가 사자에게 잡혔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사자는 날카로운 이빨로 얼룩말의 근육을 물어버립니다. 내장도 금방 드러나고 맙니다. 게나 가재 같은 갑각류들처럼 딱딱한 껍질을 두르고 있다면 근육과 내장을 보호하기 훨씬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등동물이라고 여겨지는 포유류 등은 외골격이 아닌 내골격을 선택한 것일까요?

 

외골격을 가진 동물들은 몸이 커질 때마다 껍질을 벗어내야 합니다. 몸으로 섭취한 칼슘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또 껍질에 금이 가거나 부서지기라도 바로 위기를 맞습니다. 껍질이 다시 자랄 때까지 적들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몸속에 있는 뼈는 조금씩 자랍니다. 허물을 벗지 않아도 되니 그동안의 몸을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 뼈가 부러지더라도 근육의 보호를 받으며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뼈를 몸 안에 넣은 구조가 성장이나 위기 대처에 훨씬 뛰어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어류, 양서로, 파충류, 조류, 포유류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뼈를 몸속에 넣는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뼈를 원칙에 바꿔 생각한다면 외골격은 딱딱한 기준은 강하게 내세우는 경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게나 가재의 경우에서처럼 성장이나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집니다. 반면 내골격을 가진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은 성장하기도 위험을 이겨내는 데도 유리합니다. 어쩌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단단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부드럽게 운용하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단단한 뼈는 턱뼈, 등뼈, 혹은 갑옷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이빨에서 시작됐습니다. 동물을 보호할 목적이 아니라 먹을 목적으로 말입니다. 이빨이 만들어지면서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를 먹게 됐고, 먹히지 않기 위해 갑옷을 발달시키는 물고기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5억년에서 25000년 전 고대 바다화석인 코노돈트에서 드러납니다. 이 화석은 조개처럼 생겼는데, 못처럼 생긴 가시들이 한 줄로 나란히 박힌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학자들은 코노돈트가 조개나 벌레 등으로 추측했지만 원시 어류인 칠성장어의 이빨로 사용됐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칠성장어는 뼈가 하나도 없는 부드러운 몸에 딱딱한 이빨을 가진 물고기였던 것입니다.

 

생물들은 이빨을 만든 방식을 골격뿐 아니라 다른 기관을 만드는 데도 적용했습니다. 부드럽기만 했던 생물의 몸에 털이나 물고기의 비늘, 새의 깃털, 땀샘 등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생물에게 한 번 등장한 단단함이 부드러움과 조화를 이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 셈입니다.

 

태초에 부드러움만 있었던 생물에게 이빨과 뼈가 가진 단단함의 등장은 혁명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두 가지 특성을 잘 활용한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단단한 원칙을 품는 일, 그리고 그것을 부드럽게 활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대덕넷, 내 꿈으로 가는 길


어릴 적 내가 죽어도 하기 싫었던 일 중에 하나가 공무원과 교사, 그리고 기자였다. 국가의 시스템을 관리하거나 사람을 길러내는 일, 그리고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거창한 일 등은 나 같은 범인(凡人)이 할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직업의 특성이 싫기도 했다. 내 손끝에서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그 무거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즐거운 쇼를 기획해 세상에 공급하고 싶었다. 멋들어지는 영상물을 창작해 삶에 지친 이들에게 선물하며 “당신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대가 있어 참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나로 인해 누구라도 기운을 얻고, 모두가 낙천적이고 즐거운 세상을 살기를 바랐다.


그런 내가 매일 “안녕하세요? 대덕넷 박태진 기자입니다”라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됐다. 이름 앞뒤로 ‘대덕넷’과 ‘기자’를 달고 대한민국의 과학•산업 뉴스를 세상에 전달하며 취재원의 삶에 깊숙이 상관하며 살고 있다. 과연 나는 꿈으로 가는 길에 서 있는 것일까?


1년 전 대덕넷을 선택한 이유는 성장하고 싶어서다. 졸업한 지 2년, 꿈을 향한 뜨거움만으로는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경험하든 누구를 만나든 더 이상 혼자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꾸려는 노력, 그 비슷한 것이라도 시작해야 했다. 기자라는 탈을 쓰는 것이 두려웠지만 ‘전문지’라는 데 희망을 뒀다. 과학과 산업을 중심으로 한 뉴스라면 일간지 기자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덕을 아우르는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주고 현재 진행되는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일은 재미도 있어 보였다.


3개월 간의 수습을 마친 초짜 기자는 대덕연구개발특구라는 한국의 과학 심장을 보게 됐고, 50~100년 뒤의 한국을 준비하는 멋진 과학자들을 만났다. 출입처를 산업으로 바꾸면서부터는 IT·BT·ET 등 첨단기술을 이끌어 가는 벤처 기업들을 보게 됐다. 각자 꿈꾸는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말로 다 못할 에너지가 응축돼 있었다.


6개월 정도 됐을 즈음 기자라는 직업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을 기록해 전달하는 일이 보람되기까지 했다. 나 아니면 잘 몰랐을 별을 발견해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가 참 대견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서 1년차 기자, 박태진은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현장’을 알게 됐다.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데 익숙해졌고 지역사회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지만 분명 그전보다 성장했다. 그것도 비교적 훌륭하고 빠른 속도로 말이다.


첫 직장으로 모두가 알아주는 미디어에 입사하는 것은 물론 좋다. 나도 KBS·MBC·SBS에 입사해 부모님의 어깨를 떡 벌려주고 싶었다. 보수나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 봐도 대덕넷이라는 회사는 작고 열악하다. 그러나 이 매체는 커뮤니티를 단단하게 만든다. 여기에 있어 사람들의 진짜 삶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 비록 웃음이 끊이지 않는 쇼를 기획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을 신나게 비춰줄 수 있었다. 훌륭한 영상물을 한편도 생산하지 못했지만 펄떡거리는 현장이 소리를 글로 표현하며 기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덕넷에서 보냈던 2008년 동안 나는 몇몇 사람을 향해 “당신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대가 있어 참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쇼와 영상을 다루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꿈으로 가는 길에 서 있다. 2009년을 준비하는 나는 이곳에서 배운 고마운 것들을 담아 꿈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예정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혼란한 요즘이지만 확실한 것은 ‘내 꿈이 언젠가 이뤄진다’는 사실. 목표를 잃지 않는 자는 그곳에 도달하기 마련이니까 힘을 낼 작정이다.


강렬하게 바라는 꿈, 세상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것들에게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모두가 좀 덜 외롭도록 더 웃을 수 있도록 소통과 기록의 매개자가 되겠다. 그를 위해 더 부지런히 살겠다. 성장을 통한 꿈의 실현, 멀리 바라보고 있어 오늘도 즐거운 박태진이었다.


p.s.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가족이 있는 곳, 대덕넷. 기쁘면 크게 웃고 슬퍼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과 보낸 1년여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줬던 고마운 매체가 그 비전을 이뤄낼 수 있기를. 대표님을 비롯한 식구들이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김세원 국장님과 함께! "박태진은 큰 일을 해낼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다.

 

2008년 7월 대덕넷 워크숍. 국장님 옆에서 경례 중인 박태진이다.

내 동기 임은희 기자. 나보다 오래 멋진 과학기자로 버텨낸 사랑스러운 친구다.

 

수습기간 동안 다정했던 나영, 은희, 그리고 나.

 

후배지만 동갑인 유상영 기자. 퉁명스러운데 따뜻한 좋은 놈이다.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봄바람 휘날리는 사월 하순, 서른 살 먹은 여자 셋이 전남 화순군으로 향했다. 소규모로 편백나무 도마를 제작해준다는 목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도마를 굳이 만들어서 써야했는가 하면, 그렇다. 셋 중 두 사람이 이 도마를 차기 사업 아이템으로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둘 중 한 사람이 내 지인이라 운 좋게 그들과 동행할 수 있었다. 마침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앞날을 고민하던 내게 머리도 식히고 바람도 쐬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사실 지금껏 살면서 도마를 중요하게 여긴 적이 없다. 도마는 그저 음식을 썰 때 적당히 받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피톤치드가 나오는 편백나무 도마가 궁금하기도 했고, 직접 목수를 만나 시제품을 부탁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는 것만 돈벌이로 생각했던 내게 직접 사업을 꾸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갑이지만 나는 어린이고 그들은 어른인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생각했다. 산골에 태어나 분교에서 배운, 늘 촌놈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가난한 아이, ‘지방대가 뭐 어때서?’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 꼬리표가 이롭지 않다는 걸 깨달은 상처받은 청춘, 꿈과 멀어지지 않으려 아득바득 취직했지만 세련된 구별 짓기에 튕겨나간 영혼. 그렇게 온몸으로 상처받고 사느라 아직 어른이 못 된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벌써 저만치나 어른이 된 건 아닐까. 괜한 상념에 어깨가 축 처질 즈음 화순에 도착했다. 

4시간여 달려온 길이 시간터널이라도 되는지 서울과 다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우릴 맞았다. 목공소 문이 열리자 톱밥과 먼지가 안개처럼 자욱했고 그 안에서 나타난 목수 둘은 우주비행사 같았다. 압축공기로 온몸을 씻어낸 우주비행사 아니, 목수들은 봉지 커피를 진하게 태운 따끈한 커피 5잔을 내왔다. 은근한 전라도 사투리가 간간이 섞인 회의가 시작됐다. 들러리로 따라붙은 내게도 정답게 말붙여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편백나무 도마의 크기와 수량, 목재 단가, 디자인 등에 대해 의논하던 중 한 장면이 나를 사로잡았다. 

양면 모두를 옹이가 없는 나무로 만들면 안 될까요?”

, 그라믄 단가가 좀 더 올라가요. 옹이가 읎는 게 무절인데, 그건 귀하거든요.”

왜요? 옹이는 상처 아닌가요? 나무에 상처가 그렇게 많아요?”

, 나무 한 통을 자르면 무절은 한두 개 겨우 나와요. 잘라보믄 살았는 옹이도 있고, 죽어서 무늬가 된 옹이도 있거든요.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읎어요.” 

멜빵바지를 입고 한쪽 귀에 연필을 꽂은, 서글서글한 표정의 목수 아저씨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옹이라는 게 나무가 위로 길게 자라면서 아랫부분에 죽어버린 가지들을 큰 줄기 안에 묻고 가느라 생긴 것이고, 그 바람에 무늬도 생긴다고 말이다. 죽은 가지들이 아직 줄기 속에서 완전히 묻히지 못한 걸 살아있는 옹이라고 부르는데, 목재 한 쪽에 딱지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옹이는 죽은 옹이인데 큰 줄기와 다른 방향으로 동심원을 만들어 목재에 새로운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눈 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만 특별히 아프고 다치며 여기까지 왔다고 탄식했던 좀 전에 내가 떠올라서다. 나무 하나도 상처 없이 자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싶었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큰 기둥 속에 푹 감싸고 기다리는 나무의 성장을 떠올리자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미 죽은 옹이가 되고도 남았을 약점만 들여다 본 셈이니 말이다. 

어린 나무는 장성하기 위해 잔가지를 버린다. 그리고 그 아픔을 줄기 속에 흔적으로 남겨둔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는 굳이 헤집지 않고 딱지 앉은 그대로 품는다. 그것을 이겨낼 즈음엔 큰 줄기의 무늬 속에 어우러지는 예쁜 무늬가 탄생한다. 그렇게 아프면서 크고 시간에 맡기면서 성장하는 게 나무의 삶이다. 그래서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대신 양면이 매끈한 목재를 얻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상처를 구석구석 안고 자라면 그만큼 쓸모가 많아진다. 사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만큼 알차게 성장한다. 상처가 많다는 건 어쩌면 다른 이보다 더 굵은 재목으로 자랐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편백나무 도마 시제품이 제작돼 선물 받던 날,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던 목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힘에 부치는 일이 생기면 도마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다시 백수가 된 서른 살 가난한 청춘이지만 내겐 지금껏 다져진 마음 속 옹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시나브로 쌓였던 마음 속 옹이만큼 나무줄기가 굵어져 어딜 가도 괜찮은 재목으로 쓰일 만큼 성장했다. 자신감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옹이에서 많이 나온다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처럼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줄 나를 상상해본다.

<PAPER> 2013년 12월호 '페이퍼 문예상'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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