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UNIST MAGAZINE] 배터리 역사 쓰는 스승과 제자의 ‘충분히 멋진’ 도전!

by 사랑해,태진 2020. 2. 20.

리튬 이온 배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굿이너프 UT오스틴 교수와 해수전지 기술을 개척한 김영식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그림: 레모

존 바니스터 굿이너프(John Bannister Goodenough)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업적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스마트폰에서 전기차까지 생활 곳곳에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상업화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존 굿이너프 교수기 때문. 그의 제자인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김영식 교수는 차세대 이차전지로 해수전지를 제안하고, 상업화에 도전 중이다.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난 존 굿이너프(John Bannister Goodenough) 교수는 올해 96세를 맞았다. 이 정도 나이면 은퇴 후 여생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는 아직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에서 활발하게 강의하고 연구한다. 작년에는 리튬 이온 배터리(Li-ion Battery)보다 안전하고 용량도 큰 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를 발표하기도 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한계를 넘어선 안전하고 용량 큰 ‘슈퍼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힘을 보태려는 것이다. ‘나이가 과학자의 열정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다.

수학·물리학·화학, 경계 넘나드는 과학자

굿이너프 교수는 예일대 학부 과정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2차 세계대전 참전 후에는 시카고대로 진학해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MIT 링컨연구소에서 24년간 근무하며, 컴퓨터 기억장치 연구를 했다. 컴퓨터 주기억 장치인 RAM(Random Access Memory)이 굿이너프 교수의 이론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굿이너프 교수는 1976년 영국 옥스퍼드대로 옮기면서 무기화학 쪽에 집중하게 된다. 기존 연구와 전혀 달라 보이는 행보를 보인 것은 그가 경계에 서 있는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김영식 교수는 “굿이너프 교수는 자신이 잘할 수 있으면서 남들에게 도움 되는 일이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 사이의 가교 역할’이라고 했다”며 “물리 이론을 기반으로 화학 실험을 하면서 밝혀낸 중요한 발견이 새로운 기술 탄생에 기여했고, 리튬이온배터리도 그 중 하나”라고 전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 존 굿이너프 교수. 사진: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리튬 이온 배터리는 충전해서 다시 사용하는 이차전지(Secondary Battery) 중 하나다. 리튬 이온이 전해질을 오가며 전기를 방전하고 충전하는데 양극과 음극, 전해질이 어떤 물질이냐에 따라 출력이나 충전 속도 등이 달라진다. 기존 화학자들은 황화물 계열의 물질을 써서 리튬 이온 배터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굿이너프 교수는 여기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산화물 계열을 써서 출력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1980년 굿이너프 교수는 <머티리얼즈 리서치 블러틴(Materials Research Bulletin)>에 리튬배터리의 양극 물질로 ‘리튬코발트산화물(LiCoO2)’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일본 소니(SONY)는 리튬코발트산화물을 양극 물질로 채택해 배터리를 만들었고, 1990년대 초반부터 휴대용 전자기기에 리튬이온배터리가 쓰이면서 폭발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물고기 많은 낚시터는 발견하고 떠나는 것!

“굿이너프 교수는 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해보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연구를 낚시에 비유하시면서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황금어장을 찾아 알려준 뒤에 떠나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또 다른 어장을 찾아내서 새로운 기여를 해야 하니까요.”

김영식 교수와 굿이너프 교수의 인연은 2006년, 김 교수가 텍사스오스틴대에서 박사 후 과정에 합격하면서 시작됐다. 리튬이온배터리로 명성을 날리던 굿이너프 박사에게 꼭 배우고 싶었던 김 교수는 자신의 논문과 소개서를 책자 형태로 만들어 소포로 보냈다. 그 성의를 높이 산 굿이너프 교수는 김 교수를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첫 인사는 “넌 아무것도 아니다(You are nothing)”는 말이었다. 초심자를 위한 어떤 배려도 없는 혹독한 실험실에서 수없이 실패하면서 버텨내는 동안 김 교수는 어느덧 스승을 닮아 도전을 즐기는 연구자로 성장했다.

존 굿이너프 교수와 그의 제자, 김영식 교수가 다정하게 사진을 촬영했다. 굿이너프 교수는 해수전지 기술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사진: 김영식 교수 제공

굿이너프 교수의 도전 정신은 김영식 교수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해수전지(Seawater Battery)라는 개념을 제안했던 것도 그런 영향이다. 바닷물 속 나트륨을 쓰기 때문에 자원고갈의 우려가 없는 해수전지는 현재 바다에 떠 있는 등부표용 납축전지를 대체할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난 5월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진행한 실증시험에 성공했다.

김 교수는 “이차전지를 만들 수많은 물질과 개념이 제안됐지만 실제 상업화에 성공한 건 납축전지, 니켈-금속수소전지, 리튬 이온 전지 세 가지뿐”이라며 “해수전지는 네 번째로 상용화되는 이차전지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경계’에 섰다는 공통점… 말보단 행동하는 과학자!

존 굿이너프 교수가 이론과 실험의 경계에서 활약해왔다면, 김영식 교수는 물질과 장치의 경계에서 오간다. 해수전지는 양극에 바닷물을 넣기 때문에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는 기계적인 틀부터 달라야 한다. 물질 개발뿐 아니라 장치의 이해도 필요한 것. 그런데 김 교수는 오히려 이 부분에 자신감이 있었다.

“미국 인디애나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3년간 있었는데, 학생들과 연구하려니 물질만으론 어려웠습니다. 그 친구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기계 설계와 개발도 고려해야 했죠. 그러면서 제 시야가 ‘배터리 시스템’이라는 기계 분야로 넓어졌습니다. 직접 배터리를 만들어보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해수전지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어요.”

해수전지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김영식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의 모습. 사진: 김경채

잘하던 걸 잠시 내려놓고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늘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새로운 걸 배우려는 스승 곁에 있다 보니 김 교수도 자연스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익숙해졌다. 자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구실을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열정적인 과학자, 존 굿이너프. 그를 통해 김 교수는 연구자의 자세를 체험하며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교수는 “굿이너프 교수는 100세를 바라보는 오늘도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연구를 추구하며 연구자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며 “그의 성실한 생활이 연구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과 훌륭한 과학자를 만들어내는 기초”라고 말하며 그 역시 스승처럼 행동으로 보여주는 과학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출처: <UNIST News Center> https://news.unist.ac.kr/kor/unist-magazine-2018-summer_idol-scient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