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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도서관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by 사랑해,태진 2012. 10. 7.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이언 레슬리 著‧김옥진 譯, 북로드 刊)

2012년 10월 07일


“어머~ 아이가 정말 예쁘네요!”


갓 태어난 신생아를 지켜보며 이런 감탄사를 내뱉는다면 열에 아홉은 거짓말이 아닐까?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라고 할지라도 이런 감탄사의 절반 이상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탄성이 터질 정도로 예쁘게 생긴 아기를 실제로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아기를 예쁘다고 칭찬한다. 굳이 칭찬하지 않더라도 ‘못 생겼다’는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게 인간관계를 잘 지키는 예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하얀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거짓말이 가득하다. 아이들은 배우지도 않고 남들이 버젓이 지켜 본 실수에 대해 “내가 안 그랬어”라는 거짓말을 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 평균 1.5회씩 거짓말을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10분 만에 거짓말을 3번이나 한다. 우리는 ‘거짓말쟁이’이며, 그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언 레슬리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책을 통해 거짓말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대신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거짓말의 다양한 면을 다룬다. 거짓말과 인간진화, 심리학, 예술, 역사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 ‘거짓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거짓말이 인간 진화를 이끌었다? 

인간 진화의 가장 큰 특징은 뇌의 발달이다. 150만 년 전에서 200만 년 전 사이의 우리 조상의 뇌는 현재 우리 뇌의 3분의 1 크기 수준으로 커졌다. 신체 전체에서 차지하는 크기야 작았지만, 커진 뇌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생존 차원에서만 보자면 뇌는 비싼 대가를 치르는 사치품에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커진 뇌와 높은 지능은 우리 조상을 다른 동물보다 현저히 앞서게 해줬다. 도구를 만들게 됐고, 포식자를 더 똑똑하게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 진화를 이끈 더 중요한 이유는 ‘속이려는 노력’이다. 누군가를 속이려면 새로운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이런 상상력은 구석기 시대에 꾸려진 사회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기능이었다는 것이다. 

무리를 이뤄 살게 되면 단순한 생존 차원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경쟁하는 등 더 복잡한 지적 능력을 요구받게 된다. 지난 주 아침에 누가 무슨 일을 했고, 친구와 적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행동이 주는 영향을 계산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었고, 이런 조직 속의 ‘생존’이라는 조건이 자연환경과 만나면서 인간의 진화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구성원이 늘수록 처리해야 할 관계 정보의 양은 늘어난다. 가령 구성원이 5명인 무리에서 챙겨야 할 관계가 10가지라면 20명이 되면 192가지로 늘어나는 복잡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생물종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뇌의 신피질 크기가 큰 생물종일수록 속이는 빈도가 높았고, 뇌가 클수록 거짓말을 잘 한다. 현재 인간의 뇌의 크기는 약 150명의 사회집단 속에 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피노키오의 코’를 찾을 순 없을까?

서양 동화 속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그의 코처럼 거짓말을 쉽게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얼굴’과 ‘말’에 주의를 기울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맞힐 수 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파푸아뉴기니의 포어족이 미국인의 여러 표정을 담은 사진을 보며 그들의 감정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현상이 보편적이라는 증거다. 에크먼은 얼굴근육을 분석해 ‘얼굴 움직임 부호체계’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결국 에크먼은 거짓말쟁이가 느끼는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알아차려 속임 여부를 알아차리려 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표정에 대해 훈련 받은 관찰자들은 표정을 통해 거짓말쟁이를 쉽게 가릴 수 있다. 

알데르트 프레이는 얼굴 대신 말에 집중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감정적 스트레스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긴장하는데, 그런 인지적인 부담을 활용한 것이다. 수사관들이 이 기법으로 자주 쓰는 것 중 하나는 ‘뒤에서부터 거꾸로 이야기하기’와 ‘그림 시험’이다. 두 가지 방법은 거짓말쟁이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므로 거짓말을 쉽게 드러나게 만든다.

1990년대 초에 발명된 뇌 스캔 기술인 fMRI는 거짓말을 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알아내 거짓말쟁이를 가린다. 그러나 이 기술이 고통스런 진짜 기억과 거짓말을 완벽히 구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또 용의자 스스로 진실과 거짓을 혼동할 때, 가짜 기억이 개입될 때도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거짓말과 정직은 모두 필요해

거짓말은 인간을 진화시켰으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필요하다. 거짓말이 없다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오랫동안 잘 지낼 수 없을 것이고, 거짓말을 믿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인간을 이끈 상상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윌리엄 스티븐스의 말마따나 “최후의 믿음은 당신이 허구라고 알고 있는 허구를 믿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직이 가지는 가치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진화한 ‘타고난 거짓말쟁이’지만 진실을 말하는 사회규범을 만들어 흠을 보완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게 거짓을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이해하며, 논리적이고 엄격한 과학적 절차를 거쳐 공동으로 탐구하고 학습하는 법을 찾아냈다. 또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발전시켜 어떤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의와 진실을 찾아간다. 

거짓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직이 가지는 가치를 지키려할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로 한 발 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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