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eam Factory/도서관

두근두근 내 죽음… ‘죽음’을 인정하고 행복하자!

by 사랑해,태진 2012. 1. 29.

두근두근 내 죽음… ‘죽음’을 인정하고 행복하자!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2012년 01월 29일



#1. “엄마, 이 사람이 그러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요…….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이래요.”


어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곤 한없이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름아.”
“네?”
그 책 읽지 마라.”

#2. “이 사람이 그러는데 여드름은 청소년이 지적, 육체적으로 부모 자격을 갖출 때까지 몇 년 동안 그 주변에서 잠재적으로 배우자를 내쫓는 역할을 한대요. (중략) 누나도 사춘기 때 잠재적 배우자를 내쫓는 데 성공했어요?”

그녀는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짓다, 어딘가 매혹적인 미소를 보이며 내게 답했다.


“그랬음 의대 갔지.”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나오는 장면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조로증(早老症, progeria)에 걸린 17세 소년, 한아름이다. 노인처럼 주름진 얼굴을 한 그에게는 한 시간이 하루처럼, 한 달이 1년처럼 흐른다. 그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비관하지 않는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담담하게 하루씩 살아내는 아름을 보면서 ‘죽음’ 자체를 다시 생각했다.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오히려 죽는다는 사실을 각성한 채 보내는 시간이 더 알차고 값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작가 데이비드 실즈가 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문학동네, 김명남 옮김)는 ‘두근두근 내 인생’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어쩌면 작가가 이를 염두에 두고 위의 장면을 언급했을지도 모른다.

●손톱 얼마나 빨리 자랄까?…몸에 대해 몰랐던 것들

50대인 데이비드 실즈는 ‘자연스런 죽음’에 반쯤 홀렸다. ‘죽음’은 ‘삶’이라는 ‘임시직’ 이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죽음에 관한 자료를 쏟아부어 책을 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삶을 좀더 가치 있게 꾸려나가라는 메시지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노화와 죽음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과 인생이 보인다. 죽음을 강조함으로써 더 애틋하게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은근하게 전하는 것이다. 

책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가는 과정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살펴본다.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화와 죽음으로 나눈 각 구간별 신체적 특징과 질병, 사망통계, 수명연장을 위한 노력, 인간관계, 철학적 성찰을 묶었다. 

신생아의 뼈(350개)와 평균 심장박동수(1분당 120회), 유아의 가청주파수(최대 4만Hz), 남성의 음경 길이(7.6~10.2㎝, 발기 시 12.7~17.8㎝), 나이별 수면시간과 호흡회수 같은 생물학적 자료가 각 구간의 뼈대를 이룬다. 이중에는 손톱·발톱이 자라는 속도처럼 흥미로운 주제도 있다. 아이의 손톱은 1주일에 1㎜, 발톱은 한 달에 1㎜씩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30~80세가 되면서 이 속도가 50%로 줄어들고, 속설과 달리 죽은 뒤에는 더 이상 손톱·발톱이 자라지 않는다. 

사람의 미각도 재밌다. 신생아 시기에는 입 안 전체에 맛봉오리가 돋아 있고 입천장, 목구멍, 혀의 옆면에도 미각수용체가 있다. 덕분에 아기들은 밍밍한 분유의 맛도 몇 배로 맛있게 느낀다. 잉여의 맛봉오리는 10세 무렵이 되면 사라지고, 이후로도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아예 둔감해져 맛을 알아채려면 훨씬 많은 양의 물질이 필요하다.

●‘자식을 낳고 죽어라’… 몸과 삶에 대한 진화론적 통찰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관계를 소개하는 부분도 많다. 아이가 주먹을 쥐는 ‘움켜잡기 반사’가 진화 이전 엄마의 털에 매달려야 했던 아기의 습성이라는 해석이나 사춘기 여드름에 대한 풀이 등이다. 작가와 90세가 넘은 아버지, 14세가 된 딸, 그리고 작가 주변 인물들의 일화는 책에 등장한 생물학적 자료와 진화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가는 특히 ‘자식을 낳고 죽어라’를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명령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모든 동물이 그렇듯 사람도 성적으로 성숙한 뒤에 신체적 기능이 저하된다. 사람은 25세부터 쇠락의 길을 걷는다.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데 유리하도록 매력적인 짝을 찾고, 건강한 아이를 낳은 뒤 늙고 죽는다. 

그러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신체는 다들 비슷하게 늙어가기 때문이다. 책 속에 깨알같이 제시된 ‘몇 세부터 어떤 노화현상이 나타나는지’를 보면 괜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게 된다. 여기까지 오면 남은 시간을, 늙어서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죽음을 담담히 인정하는 자세로 말이다.

●과학적 사실 곁들인 한 편의 자전수필

사실 이 책의 영역과 장르는 애매하다. 과학적 사실이 내용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과학책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작가의 경험만 모아 쓴 수필도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각종 자료는 마치 보고서를 보는 듯하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농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스포츠 관련 칼럼 같다. 굳이 분류하자면 ‘과학적 사실을 곁들인 자전수필’ 정도가 되겠다. 

삶과 죽음에 대한 정리된 자료를 원한다면 다소 어지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경험으로 스토리텔링한 덕분에 딱딱한 과학적 사실이 쉽게 이해된다.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부상으로 좌절된 작가의 경험이 읽는 재미를 더하고 해부학이나 진화학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책 중간에 크게 등장하는 수많은 문학적 경구도 인상적이다. 이 문구들은 읽는 이가 삶과 죽음에 관해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BBC의 첫 사장이었던 리스 경은 78세에 “나는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너무나도 늦게 삶은 살기 위한 것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책으로 리스 경보다 훨씬 일찍 ‘삶의 가치’를 깨달았다. 2012년에는 죽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행동해 보는 건 어떨까.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