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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 Reporter/인터뷰

[도시사람들] 모두의 ‘행복한 인생’을 바라는 공간, <카페 비다 펠리즈>

by 사랑해,태진 2020. 2. 26.

[사람의 표정] 백신애길 풍경 바꿔놓은 <카페 비다 펠리즈>의 양진성 대표

 

영천시 서부동은 한때 도시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이다. 향교와 문화원이 있고 각종 관공서도 자리해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니 골목도 왁자했다. 이런 활기는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다른 동네로 떠나면서 차츰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20179월 작은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대 청년들이 손수 꾸민 <와이식당><카페 비다 펠리즈(이하 카페 비다’)>에서 만들어지는 만남, 대화, 즐거움이 도시 풍경을 바꾸는 중이다.

 

양진성 대표가 카운터에서 주문 받을 준비에 나섰다. 사진 속 문구처럼 빠르고 신속하게 음료를 만들어준다. / 사진 박태진

 

저희 가게 덕에 동네가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이곳은 쇠락하는 도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외지에서도 찾아오는 골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와이식당><카페 비다>의 공동 창업자인 양진성 대표는 2층 카페를 살롱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공간으로 삼고, 여럿이서 좋아하는 걸 공유할 기회도 주고 싶었다. 건물 여건상 카페로 꾸밀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무언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데 기쁨을 느낀다.

 

서부동 발전위원회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도 한 번씩 참여해 의견을 내면서 이 동네 발전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벽화도 그리고, 둘레길도 만들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할 계획이에요. 사람이 모여야 ‘문화’가 나오니까요.

 

<카페 비다 펠리즈>가 자리한 백신애길의 모습. 이 가게가 들어서기 전에는 더욱 한산한 거리였으나 최근에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서부동에 불어오는 봄바람에는 분명 양진성 대표의 역할도 있었으리라. / 사진: 박태진

 

황폐한 골목이 ‘와~’ 하고 모이는 맛집 거리로

 

양진성 대표는 1991년생으로 아직 서른이 안 된 청년이다. 서부동에서 태어나 영화초등학교를 나왔고, 직장을 다니면서 서울과 경기도, 대구, 경주 등 다른 도시를 경험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동업자와는 영화초등학교 동창인데, 두 사람이 함께 가게를 열기로 한 게 2017년이다. 원래 서울이나 일산, 판교 등에서 가게를 열 생각이었으나 휴가차 들렀던 서부동 풍경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양 대표는 추억이 많은 장소였는데 황폐해져서 충격을 받았고, 또 서글퍼졌다어디든 가게를 열 생각이었으니 이왕이면 영천에서 시작하자고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서부동을 둘러보다가 눈에 띈 장소가 지금의 <와이식당>이 있는 3층 건물이다. 당시 1층에 점집이, 2층에는 간판만 건설회사인 빈 점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인은 3층에 살고 있었지만, 부동산에 세도 내놓지 않은 상황. 어렵게 주인을 만나 가게를 열고 싶다고 전했지만, 주변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상권이 죽어버린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손을 내저었다.

 

<와이식당>의 외관. 낡은 건물이지만 내부를 아기자기 꾸며서 젊은이의 감성에 맞췄다. 양 대표의 동업자가 미술을 전공한 덕분에 가게 인테리어에는 걱정이 없다. 가끔 파티를 여는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 사진: 박태진 

 

저희 생각은 달랐어요. 숭렬당 뒤쪽 공간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 시내에서 조금 멀어도 젊은 감성으로 무장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봤어요.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체인점이 아니라 저희만의 감성을 담은 공간을 꾸미면 된다고 봤죠.”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청년들은 석 달에 걸쳐 가게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건물 도면을 새로 만들고, 온갖 고물들을 갖다 버렸다. 벽을 칠할 페인트 색부터 소품까지 일일이 고르고 꾸미면서 <와이식당><카페 비다>를 완성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꾸준히 입소문이 났다. 단골손님도 하나둘 생겼고, 대구에서 일부러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엔 건물을 너무 고친다고 못마땅해하던 주인도 요즘에는 간식까지 챙겨주며 격려해준다. 이웃들도 동네에 사람들이 드나들며 밝아진 풍경이 모두 <카페 비다>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양 대표는 지인 중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쳤더니 바위가 깨진 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싱긋 웃었다.

 

<카페 비다> 내부 모습. 걸어두는 그림들이 자주 바뀌고, 귀여운 소품도 많다. '영천에도 이런 곳이 있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귀여운 공간이 꽤 많아지는 중이다. / 사진: 박태진
<카페 비다>의 내부. 오래된 건물을 뜯어내고 빈티지 느낌으로 내부를 바꿨다. 양진성 대표와 동업자의 손길이 하나하나 묻어 있다. / 사진: 박태진

백신애길과 <카페 비다>… “정답은 없다”

 

가게가 들어선 백신애길에는 백신애 생가터가 있다. 신춘문예 출신 첫 여성 소설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지역 출신 문학가를 기리느라 도로명에 백신애라는 인명을 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영천 사람들도 백신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양진성 대표도 사업자 등록을 위해 주소를 찾으니 백신애길이라고 쓰여 있어 찾아보게 됐다생가터도 둘러봤는데 보존 상태가 나쁘고 안내판이 작아서 아쉬움이 남았다고 전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카페 비다>가 유명해지면서 백신애길도 차츰 알려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백신애도 하근찬과 함께 영천 하면 떠오르는 문학가가 될지 모른다. 백신애는 어여쁘고 총명한 부잣집 외동딸이었지만, 안온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식민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무지와 궁핍한 삶 그리고 시베리아, 만주로 떠도는 백성들의 참상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알려졌다.(영남일보, 2014.12.01.) 그녀의 소설은 사람의 삶, 다시 말해 인생에 중점을 둔다. 그 지점에서 <카페 비다>와 통하는 점이 있다.

 

신춘문예 출신 첫 여성 작가, 백신애. 그녀 생가가 영천에 있다.


비다 펠리즈(Vida feliz)는 스페인어로 ‘행복한 인생’을 뜻합니다. 직장에서 업무에 치인 분들도, 육아에 지친 분들도, 학업이나 진로가 고민인 분들도 모두 행복한 인생을 꾸리길 바란다는 생각으로 정한 이름이에요. 모두 다르게 살지만 전부 행복할 수 있잖아요.”

 

양 대표는 카페에 들른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인생을 살기 바란다. 행복을 위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 공간을 운영하는 모토(motto)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좋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괌 여행에서 구해온 가방을 손님에게 주기도 하고, 물놀이 시즌에는 튜브형 트레이도 증정하는 등 늘 정답 없이새로운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카페 비다>에 놓여진 다양한 소품들. 이곳에서 어떤 이벤트가 꾸며질지 기대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 사진: 박태진

 

내년에는 정답은 없다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활용한 티셔츠를 만들고 판매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 단골손님에게는 선물하고 수익금이 생기면 기부할 생각도 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동업자의 솜씨가 아까워서 이런저런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면 싶은 마음도 있다. 양 대표는 혼자였으면 정말 힘들었을 길인데 함께 해주는 동료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카페 비다>를 갤러리나 공유 스튜디오 등으로도 활용해 예술가들이 모이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 이런저런 고민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기회의 도시, 영천

 

양 대표는 영천을 ‘제약과 기회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표현했다. 대구나 경주, 포항 등에 비하면 작은 규모라 못 갖춘 게 많지만, 그 덕분에 도전해볼 여지가 많다는 설명이다. 다른 도시에는 있지만, 영천에는 없는 부분을 찾아 사업을 추진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 가령 <카페 비다>에서 시도하는 캔 용기레터링 서비스만 해도 좋은 반응을 이끌며 입소문이 나고 있다.

 

캔에 써주는 문구에 모든 이의 행복을 바라는 양 대표의 마음이 엿보인다. / 사진 박태진

 

캔에 음료를 담아 내어놓는 서비스는 다른 도시에도 있어요. 그런데 영천에선 아직 저희 가게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캔 겉면에 문구를 써서 편지처럼 전하고 있는데요. 손님들이 원하는 문구는 물론이고, 계절별로 어울리는 문구를 직접 써서 활용 중입니다.”

 

<카페 비다>를 찾는 영천 사람들은 캔에 쓰인 짧은 편지로 소소한 기쁨을 얻는다. 온종일 지쳤던 일상을 문장 하나로 위로받기도 한다. 백신애길에서 피어나는 작지만 소중한 문학적 풍경인 셈이다. 이렇게 조용히 낡아가던 구도심을 밝힌 <카페 비다>의 빛은 조금씩 퍼지는 중이다. 인근에 마카롱을 손수 만들어 파는 가게가 들어섰고, 남다른 감각을 갖춘 옷 가게도 문을 열었다. 사람이 더 모여들면 자연스럽게 문화도 만들어질지 모른다.

 

양진성 대표를 그린 캐릭터와 <와이식당>이 함께 적힌 그의 명함. 그의 도전으로 영천에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 사진: 박태진 

 

양 대표는 어쩌면 재능이 있어도 망설이던 사람들이 <와이식당><카페 비다>를 보고 용기를 낸 것인지 모른다백신애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냈다는 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천에 강변공원이나 문화센터, 도서관 등 도시민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하나둘씩 갖춰지고 있어 다행이라며 영천에서도 여가를 즐길 공간이 많아지고, 웬만한 건 도시 안에서 해결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2020년 2월 발행된 <도시사람들: 나는 소도시 영천에 산다>에 실린 원고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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