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eam Factory/도서관

식물은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는가

by 사랑해,태진 2012. 6. 3.

식물은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는가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著

2012년 06월 03일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먼 산들을 바라보라. 어린애들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 이양하의 ‘신록예찬’ 중에서

신록이 피는 5월을 지나고, 녹음이 세상을 정복하는 6월이 왔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새로 피는 꽃과 잎이 주는 감동은 늘 그대로다. 일찍이 문학가들은 싱그러운 잎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해 또 다른 감동을 전하곤 했다.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는 꽃과 신록과 녹음, 단풍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이다. 

문학가들이 식물의 아름다움을 보는 동안 과학자들은 식물이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구조는 어떠하며, 무슨 용도로 쓸 수 있는지, 또 우리에게 더 유용한 존재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이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주제다.

수잔네 파울젠(Susanne Paulsen)이 쓴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과학자의 시선에서 쓴 글이지만 문학가의 감성도 살아있는 책이다. 식물학과 동물학, 유전학을 전공하고 분자 생물학자로 연구한 그녀가 전하는 식물 이야기는 아무래도 과학적인 설명에 가깝다. 


그러나 그녀는 딱딱한 설명만 늘어놓는 대신 식물을 이해하는 방법을 전해준다.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본 식물에 대한 설명이다 보니 문학적인 감성도 느낄 수 있다.

1장에 인용된 남미 원주민인 라칸돈 인디언의 말, “만약 나무가 없다면,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다”는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조용해서 잘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식물이라는 존재는 우리뿐 아니라 지구 전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총 21가지의 소주제로 묶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식물의 생리는 물론 식물이 인간에게 준 혜택, 식물이 바꾼 역사 등 우리 삶 구석구석에 들어와 있는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세상을 바꾼 식물들… 육두구 종자, 후추, 그리고 감자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드는 포도당은 잎과 줄기 열매와 꽃의 모양으로 나타나고, 이는 인간과 동물의 식량이 된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살 수 있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식물인 셈이다. 인간에게 식물은 단순한 식량만이 아니었다. 파울젠은 육두구 종자와 후추, 감자를 예로 들어 ‘식물은 발견과 정복과 전쟁, 그 모든 종류의 문화적 변동의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후추’였다. 남인도 열대식물인 후추는 담쟁이덩굴처럼 높은 나무에 기어 올라가며 자란다. 딸기 같은 열매는 강렬한 맛을 내며 양념으로 좋았다. 소금에 절인 살코기나 상해가는 생선, 수분을 잃은 야채에 뿌리면 맛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이전에는 베니스 상인이 후추를 유럽으로 가져왔는데, 15세기 말경 터키가 이들이 지나가는 해상로를 봉쇄하면서 후추가 귀해졌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투갈 사람들이 뱃길로 동양에 가려고 했고 콜럼버스가 새 대륙를 찾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콜럼버스는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를 찾았지만 이 지역도 유용한 식물자원의 보고였다. 정복자들은 코코아 열매와 옥수수 낟알, 감자, 토마토, 콩, 파프리카 등을 자신들의 땅에 가져가 심고 경작했다. 인디언의 식물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첫 번째 사건인 셈이다.

육두구 종자 역시 역사를 만든 식물이다. 식물학명으로 미리스티카 프라간스(Myristica fragans)인 이 나무는 향기가 좋으며 꽃과 열매가 다양한 서양 요리에서 중요한 향신료로 쓰인다. 중세만 해도 이 열매가 어디서 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1284년 영국에서는 1파운드의 육두구 꽃 값이 양 세 마리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13세기 말 즈음, 베니스인 마르코 폴로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수마트라, 인도 등을 여행하며 육두구 종자와 후추, 라벤더 같은 양념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반다섬을 찾았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이 사실이 실리자 사람들은 ‘양념의 섬’을 찾는 추적이 시작됐고, 이곳에서 스페인과 포르투칼, 네덜란드 등 열강의 싸움이 계속 됐다. 식물 때문에 일어난 대표적인 분쟁인 셈이다.



감자 이야기는 꽤 유명한 편이다. 1555년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감자를 발견한 유럽 사람들은 감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해 정원에 심고 보기를 즐겼다. 그런데 약 200년이 지난 후에야 안데스 원주민이 이미 알던 사실을 발견했다. 땅 속에 먹을 수 있는 덩이줄기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감자의 덩이줄기는 곡식보다 곱절 이상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었고, 괴혈병을 예방하는 비타민C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감자를 ‘기적의 덩어리’로 불렀고, 유럽에서 급속하게 확산됐다. 특히 땅이 척박하고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의 인구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845년과 1846년에 걸쳐 감자 흉년이 되자 100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죽고, 남은 사람들은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된다. 이렇게 아메리카에 정착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미국의 문화와 종교와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줬고, 미국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결국 감자를 찾고 널리 퍼뜨리게 된 게 19세기 서양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인간은 식물에게 무엇인가… ‘위험한 존재’


식물이 역사을 바꾼 이야기 외에도 식물과 인간의 의사소통이나 식물이 지금까지 진화하기 위해 적응하고 변화한 과정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다. 그중 한 가지 더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인간은 식물에게 무엇인가’를 하는 생각들이다.


지난 몇 백 년 사이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땅과 강과 바다에 오염물질을 버리고, 온갖 야생식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덕분에 지구는 이전에 겪지 못했던 ‘사라짐과 파멸의 단계’를 겪고 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인간은 식물의 생활공간을 파괴하고 보호지역에서 밀어냈으며 멸종시켰다. 지금도 우리 미래를 바꿀지 모를 수십 종의 식물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4억 년 동안 식물이 진화하면서 만들어 놓은 식물들을 인간의 힘으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 파울젠은 이 점을 꼭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인간은 번영할지 모르나 우리의 지구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파울젠은 식물을 인간만의 것이라 보지 않는다. 식물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를 지켜온 지구의 ‘오래된 주인’이라고 소개한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아직 몰랐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 나오는 각종 식물의 사진과 맵시 있게 붙인 소제목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 이 책을 손에 들고 식물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가져올 듯 하지 아니한가?” - 이양하의 ‘수필예찬’ 중에서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