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는가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著 2012년 06월 03일 |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먼 산들을 바라보라. 어린애들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 이양하의 ‘신록예찬’ 중에서 수잔네 파울젠(Susanne Paulsen)이 쓴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과학자의 시선에서 쓴 글이지만 문학가의 감성도 살아있는 책이다. 식물학과 동물학, 유전학을 전공하고 분자 생물학자로 연구한 그녀가 전하는 식물 이야기는 아무래도 과학적인 설명에 가깝다.
감자 이야기는 꽤 유명한 편이다. 1555년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감자를 발견한 유럽 사람들은 감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해 정원에 심고 보기를 즐겼다. 그런데 약 200년이 지난 후에야 안데스 원주민이 이미 알던 사실을 발견했다. 땅 속에 먹을 수 있는 덩이줄기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감자의 덩이줄기는 곡식보다 곱절 이상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었고, 괴혈병을 예방하는 비타민C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감자를 ‘기적의 덩어리’로 불렀고, 유럽에서 급속하게 확산됐다. 특히 땅이 척박하고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의 인구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845년과 1846년에 걸쳐 감자 흉년이 되자 100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죽고, 남은 사람들은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된다. 이렇게 아메리카에 정착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미국의 문화와 종교와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줬고, 미국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결국 감자를 찾고 널리 퍼뜨리게 된 게 19세기 서양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인간은 식물에게 무엇인가… ‘위험한 존재’ 식물이 역사을 바꾼 이야기 외에도 식물과 인간의 의사소통이나 식물이 지금까지 진화하기 위해 적응하고 변화한 과정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다. 그중 한 가지 더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인간은 식물에게 무엇인가’를 하는 생각들이다. 지난 몇 백 년 사이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땅과 강과 바다에 오염물질을 버리고, 온갖 야생식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덕분에 지구는 이전에 겪지 못했던 ‘사라짐과 파멸의 단계’를 겪고 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인간은 식물의 생활공간을 파괴하고 보호지역에서 밀어냈으며 멸종시켰다. 지금도 우리 미래를 바꿀지 모를 수십 종의 식물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4억 년 동안 식물이 진화하면서 만들어 놓은 식물들을 인간의 힘으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 파울젠은 이 점을 꼭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인간은 번영할지 모르나 우리의 지구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파울젠은 식물을 인간만의 것이라 보지 않는다. 식물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를 지켜온 지구의 ‘오래된 주인’이라고 소개한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아직 몰랐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 나오는 각종 식물의 사진과 맵시 있게 붙인 소제목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 이 책을 손에 들고 식물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가져올 듯 하지 아니한가?” - 이양하의 ‘수필예찬’ 중에서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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