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뼈 연약한 살 속으로 숨다

 

가을바다 속은 두족류(頭足類) 세상입니다. 겨울을 앞두고 열심히 먹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오징어나 주꾸미가 지천에 널려 있거든요. 뼈가 없이 부드러운 살로 이뤄진 연체동물들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닙니다. 그 유연한 몸놀림을 보노라면 우리의 뻣뻣한 몸이 조금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딱딱한 뼈들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움직일 수 없고, 잘못 움직이면 관절이 어긋나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뼈는 우리가 움직이는 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입니다. 우선 등뼈와 다리뼈는 지구 중력을 이기고 땅 위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만약 뼈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렁이나 거머리처럼 온몸을 땅에 붙인 채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들은 뼈를 부드러운 근육 속에 감추고 있는데요. 근육이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나오는 힘을 받아 뼈를 움직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서고, 걷고, 달릴 수 있습니다.

 

유연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관절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했습니다. 대퇴골이나 정강이뼈, 손가락 뼈 등은 여러 개의 작은 뼈로 이뤄져있어서 유연하게 구부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근육이지만 사실 근육은 단단한 뼈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뼈는 외부의 힘을 이기고,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근원입니다.

 

단단한 뼈는 원칙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데 맞춰야 한다는 건 우리에게 제한이나 제약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단하게 서 있는 기준은 오히려 더 큰 효율을 만들어 냅니다. 뼈가 있어 똑바로 서고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은 질서를 만들고, 질서가 있어 세상이 원활하게 움직입니다.

 

포유동물처럼 뼈가 근육 안으로 들어간 내골격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얼룩말 같은 포유류가 사자에게 잡혔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사자는 날카로운 이빨로 얼룩말의 근육을 물어버립니다. 내장도 금방 드러나고 맙니다. 게나 가재 같은 갑각류들처럼 딱딱한 껍질을 두르고 있다면 근육과 내장을 보호하기 훨씬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등동물이라고 여겨지는 포유류 등은 외골격이 아닌 내골격을 선택한 것일까요?

 

외골격을 가진 동물들은 몸이 커질 때마다 껍질을 벗어내야 합니다. 몸으로 섭취한 칼슘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또 껍질에 금이 가거나 부서지기라도 바로 위기를 맞습니다. 껍질이 다시 자랄 때까지 적들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몸속에 있는 뼈는 조금씩 자랍니다. 허물을 벗지 않아도 되니 그동안의 몸을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 뼈가 부러지더라도 근육의 보호를 받으며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뼈를 몸 안에 넣은 구조가 성장이나 위기 대처에 훨씬 뛰어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어류, 양서로, 파충류, 조류, 포유류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뼈를 몸속에 넣는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뼈를 원칙에 바꿔 생각한다면 외골격은 딱딱한 기준은 강하게 내세우는 경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게나 가재의 경우에서처럼 성장이나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집니다. 반면 내골격을 가진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은 성장하기도 위험을 이겨내는 데도 유리합니다. 어쩌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단단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부드럽게 운용하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단단한 뼈는 턱뼈, 등뼈, 혹은 갑옷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이빨에서 시작됐습니다. 동물을 보호할 목적이 아니라 먹을 목적으로 말입니다. 이빨이 만들어지면서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를 먹게 됐고, 먹히지 않기 위해 갑옷을 발달시키는 물고기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5억년에서 25000년 전 고대 바다화석인 코노돈트에서 드러납니다. 이 화석은 조개처럼 생겼는데, 못처럼 생긴 가시들이 한 줄로 나란히 박힌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학자들은 코노돈트가 조개나 벌레 등으로 추측했지만 원시 어류인 칠성장어의 이빨로 사용됐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칠성장어는 뼈가 하나도 없는 부드러운 몸에 딱딱한 이빨을 가진 물고기였던 것입니다.

 

생물들은 이빨을 만든 방식을 골격뿐 아니라 다른 기관을 만드는 데도 적용했습니다. 부드럽기만 했던 생물의 몸에 털이나 물고기의 비늘, 새의 깃털, 땀샘 등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생물에게 한 번 등장한 단단함이 부드러움과 조화를 이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 셈입니다.

 

태초에 부드러움만 있었던 생물에게 이빨과 뼈가 가진 단단함의 등장은 혁명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두 가지 특성을 잘 활용한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단단한 원칙을 품는 일, 그리고 그것을 부드럽게 활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대덕넷, 내 꿈으로 가는 길


어릴 적 내가 죽어도 하기 싫었던 일 중에 하나가 공무원과 교사, 그리고 기자였다. 국가의 시스템을 관리하거나 사람을 길러내는 일, 그리고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거창한 일 등은 나 같은 범인(凡人)이 할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직업의 특성이 싫기도 했다. 내 손끝에서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그 무거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즐거운 쇼를 기획해 세상에 공급하고 싶었다. 멋들어지는 영상물을 창작해 삶에 지친 이들에게 선물하며 “당신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대가 있어 참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나로 인해 누구라도 기운을 얻고, 모두가 낙천적이고 즐거운 세상을 살기를 바랐다.


그런 내가 매일 “안녕하세요? 대덕넷 박태진 기자입니다”라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됐다. 이름 앞뒤로 ‘대덕넷’과 ‘기자’를 달고 대한민국의 과학•산업 뉴스를 세상에 전달하며 취재원의 삶에 깊숙이 상관하며 살고 있다. 과연 나는 꿈으로 가는 길에 서 있는 것일까?


1년 전 대덕넷을 선택한 이유는 성장하고 싶어서다. 졸업한 지 2년, 꿈을 향한 뜨거움만으로는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경험하든 누구를 만나든 더 이상 혼자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꾸려는 노력, 그 비슷한 것이라도 시작해야 했다. 기자라는 탈을 쓰는 것이 두려웠지만 ‘전문지’라는 데 희망을 뒀다. 과학과 산업을 중심으로 한 뉴스라면 일간지 기자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덕을 아우르는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주고 현재 진행되는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일은 재미도 있어 보였다.


3개월 간의 수습을 마친 초짜 기자는 대덕연구개발특구라는 한국의 과학 심장을 보게 됐고, 50~100년 뒤의 한국을 준비하는 멋진 과학자들을 만났다. 출입처를 산업으로 바꾸면서부터는 IT·BT·ET 등 첨단기술을 이끌어 가는 벤처 기업들을 보게 됐다. 각자 꿈꾸는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말로 다 못할 에너지가 응축돼 있었다.


6개월 정도 됐을 즈음 기자라는 직업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을 기록해 전달하는 일이 보람되기까지 했다. 나 아니면 잘 몰랐을 별을 발견해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가 참 대견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서 1년차 기자, 박태진은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현장’을 알게 됐다.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데 익숙해졌고 지역사회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지만 분명 그전보다 성장했다. 그것도 비교적 훌륭하고 빠른 속도로 말이다.


첫 직장으로 모두가 알아주는 미디어에 입사하는 것은 물론 좋다. 나도 KBS·MBC·SBS에 입사해 부모님의 어깨를 떡 벌려주고 싶었다. 보수나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 봐도 대덕넷이라는 회사는 작고 열악하다. 그러나 이 매체는 커뮤니티를 단단하게 만든다. 여기에 있어 사람들의 진짜 삶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 비록 웃음이 끊이지 않는 쇼를 기획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을 신나게 비춰줄 수 있었다. 훌륭한 영상물을 한편도 생산하지 못했지만 펄떡거리는 현장이 소리를 글로 표현하며 기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덕넷에서 보냈던 2008년 동안 나는 몇몇 사람을 향해 “당신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대가 있어 참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쇼와 영상을 다루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꿈으로 가는 길에 서 있다. 2009년을 준비하는 나는 이곳에서 배운 고마운 것들을 담아 꿈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예정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혼란한 요즘이지만 확실한 것은 ‘내 꿈이 언젠가 이뤄진다’는 사실. 목표를 잃지 않는 자는 그곳에 도달하기 마련이니까 힘을 낼 작정이다.


강렬하게 바라는 꿈, 세상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것들에게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모두가 좀 덜 외롭도록 더 웃을 수 있도록 소통과 기록의 매개자가 되겠다. 그를 위해 더 부지런히 살겠다. 성장을 통한 꿈의 실현, 멀리 바라보고 있어 오늘도 즐거운 박태진이었다.


p.s.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가족이 있는 곳, 대덕넷. 기쁘면 크게 웃고 슬퍼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과 보낸 1년여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줬던 고마운 매체가 그 비전을 이뤄낼 수 있기를. 대표님을 비롯한 식구들이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김세원 국장님과 함께! "박태진은 큰 일을 해낼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다.

 

2008년 7월 대덕넷 워크숍. 국장님 옆에서 경례 중인 박태진이다.

내 동기 임은희 기자. 나보다 오래 멋진 과학기자로 버텨낸 사랑스러운 친구다.

 

수습기간 동안 다정했던 나영, 은희, 그리고 나.

 

후배지만 동갑인 유상영 기자. 퉁명스러운데 따뜻한 좋은 놈이다.

알려주어서 참말로 고마운 그 이야기들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 서진영  

참 고마운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디 손 뻗을 데 없이 곤궁한 처지인 내게 곁을 내주고, 초라하고 구석진 마음을 달래줬던 사람이다. 내가 옹졸한 탓에 한동안 연락도 뜸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조차 귀한 기회를 선물했다. 일 년 동안 전통공예품을 만드는 사람 여섯 명을 만나고 글을 써보라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을 추천했다. 내용도 구성도 참고할 수 있을 거라고 살뜰하게 마음을 써준 것이다. 이렇게 읽게 된 책에는 일종의 팔도 여행기가 펼쳐져 있었다. 열두 명의 공예 무형문화재 찾아 서천(한산모시), 나주(쪽 염색과 소반), 서울(바느질), 영덕(옹기), 단양(사기), 수원(창호), 통영(발과 나전), 남원(백동연죽), 곡성(낙죽장도), 청주(배첩)를 밟았으니 전국 팔도를 웬만큼 둘러본 셈이다. 그러나 글들은 여느 여행기와 달랐다. 잊혀져가는 공예품과 그를 만드는 장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남다름을 빚어내고 있었다. 조상들이 입고, 먹고, 살아가는 데 사용했을 물품은 고왔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것들을 이날 이때껏 손수 만들며 전통을 이어온 장인들의 소신에는 머리가 숙여졌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을 다해 물건을 만드는 어르신들의 솜씨와 삶은 공예품 못지않게 빛이 났다. 그래서 한 장씩 넘길수록 몰라주어서 미안한 마음이 커졌지만 알게 되어서 기쁜 마음도 늘어났다. 어설픈 관광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캐낸 서진영 작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마 책 속에 소개된 장인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법이니까. 이 책으로 그런 사람이 몇 곱절로 늘었으니 더욱 좋지 않을까 넘겨 짚어본다.  박태진 評

<PAPER> 2014년 8월호 '클립보드' 中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지구의 정복자 | 에드워드 윌슨 

수학이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라 과학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런 나를 과학의 세계로 이끈 책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다. 이 책에는 진화가 인간이나 인류 단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벌어진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들어 있었다.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고,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혈연관계에 있는 남을 돕는 성향이 나타난다는 논리였다. 불편했지만 그럴 듯 했다. 이 논리에 이끌려 과학기자가 됐고 한참 과학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일반인으로 돌아올 즈음 서점에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이 등장했다. 시뻘건 띠지에 “‘이기적 유전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명한 문구를 써놓은 터라 놀라서 책을 펼쳤다.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진화시킨 주된 힘이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신체적 약점이 많은 인류가 오늘날까지 진화한 비결은 역할을 나누고 소통하고 돕는 고도의 사회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개인으로 봤을 때 이기적인 성향은 당장의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집단 전체로 보면 이타적 성향을 가진 자가 많아야 전체적인 생존과 번식에 덕이 된다. 그러니 이기성과 이타성이 여러 환경에서 적절하게 선택돼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타적 성향이 인류를 진화시켰다는 대목에 한참 동안 눈이 머물렀다. 누구를 위하고 돕는 게 지금의 인류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니 뭉클해졌다.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먼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많이 나누고 돕고 마음을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  박태진 評

<PAPER> 2014년 4월호 '클립보드' 中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봄바람 휘날리는 사월 하순, 서른 살 먹은 여자 셋이 전남 화순군으로 향했다. 소규모로 편백나무 도마를 제작해준다는 목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도마를 굳이 만들어서 써야했는가 하면, 그렇다. 셋 중 두 사람이 이 도마를 차기 사업 아이템으로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둘 중 한 사람이 내 지인이라 운 좋게 그들과 동행할 수 있었다. 마침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앞날을 고민하던 내게 머리도 식히고 바람도 쐬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사실 지금껏 살면서 도마를 중요하게 여긴 적이 없다. 도마는 그저 음식을 썰 때 적당히 받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피톤치드가 나오는 편백나무 도마가 궁금하기도 했고, 직접 목수를 만나 시제품을 부탁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는 것만 돈벌이로 생각했던 내게 직접 사업을 꾸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갑이지만 나는 어린이고 그들은 어른인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생각했다. 산골에 태어나 분교에서 배운, 늘 촌놈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가난한 아이, ‘지방대가 뭐 어때서?’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 꼬리표가 이롭지 않다는 걸 깨달은 상처받은 청춘, 꿈과 멀어지지 않으려 아득바득 취직했지만 세련된 구별 짓기에 튕겨나간 영혼. 그렇게 온몸으로 상처받고 사느라 아직 어른이 못 된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벌써 저만치나 어른이 된 건 아닐까. 괜한 상념에 어깨가 축 처질 즈음 화순에 도착했다. 

4시간여 달려온 길이 시간터널이라도 되는지 서울과 다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우릴 맞았다. 목공소 문이 열리자 톱밥과 먼지가 안개처럼 자욱했고 그 안에서 나타난 목수 둘은 우주비행사 같았다. 압축공기로 온몸을 씻어낸 우주비행사 아니, 목수들은 봉지 커피를 진하게 태운 따끈한 커피 5잔을 내왔다. 은근한 전라도 사투리가 간간이 섞인 회의가 시작됐다. 들러리로 따라붙은 내게도 정답게 말붙여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편백나무 도마의 크기와 수량, 목재 단가, 디자인 등에 대해 의논하던 중 한 장면이 나를 사로잡았다. 

양면 모두를 옹이가 없는 나무로 만들면 안 될까요?”

, 그라믄 단가가 좀 더 올라가요. 옹이가 읎는 게 무절인데, 그건 귀하거든요.”

왜요? 옹이는 상처 아닌가요? 나무에 상처가 그렇게 많아요?”

, 나무 한 통을 자르면 무절은 한두 개 겨우 나와요. 잘라보믄 살았는 옹이도 있고, 죽어서 무늬가 된 옹이도 있거든요.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읎어요.” 

멜빵바지를 입고 한쪽 귀에 연필을 꽂은, 서글서글한 표정의 목수 아저씨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옹이라는 게 나무가 위로 길게 자라면서 아랫부분에 죽어버린 가지들을 큰 줄기 안에 묻고 가느라 생긴 것이고, 그 바람에 무늬도 생긴다고 말이다. 죽은 가지들이 아직 줄기 속에서 완전히 묻히지 못한 걸 살아있는 옹이라고 부르는데, 목재 한 쪽에 딱지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옹이는 죽은 옹이인데 큰 줄기와 다른 방향으로 동심원을 만들어 목재에 새로운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눈 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만 특별히 아프고 다치며 여기까지 왔다고 탄식했던 좀 전에 내가 떠올라서다. 나무 하나도 상처 없이 자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싶었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큰 기둥 속에 푹 감싸고 기다리는 나무의 성장을 떠올리자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미 죽은 옹이가 되고도 남았을 약점만 들여다 본 셈이니 말이다. 

어린 나무는 장성하기 위해 잔가지를 버린다. 그리고 그 아픔을 줄기 속에 흔적으로 남겨둔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는 굳이 헤집지 않고 딱지 앉은 그대로 품는다. 그것을 이겨낼 즈음엔 큰 줄기의 무늬 속에 어우러지는 예쁜 무늬가 탄생한다. 그렇게 아프면서 크고 시간에 맡기면서 성장하는 게 나무의 삶이다. 그래서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대신 양면이 매끈한 목재를 얻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상처를 구석구석 안고 자라면 그만큼 쓸모가 많아진다. 사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만큼 알차게 성장한다. 상처가 많다는 건 어쩌면 다른 이보다 더 굵은 재목으로 자랐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편백나무 도마 시제품이 제작돼 선물 받던 날,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던 목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힘에 부치는 일이 생기면 도마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다시 백수가 된 서른 살 가난한 청춘이지만 내겐 지금껏 다져진 마음 속 옹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시나브로 쌓였던 마음 속 옹이만큼 나무줄기가 굵어져 어딜 가도 괜찮은 재목으로 쓰일 만큼 성장했다. 자신감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옹이에서 많이 나온다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처럼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줄 나를 상상해본다.

<PAPER> 2013년 12월호 '페이퍼 문예상' 우수상 수상작


사는 공간이 생각의 틀을 만든다

아파트 :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 박철수

아파트,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60%가 사는 집이다. 똑같은 넓이와 공간 배치로 이뤄진 성냥갑 같은 건축물이지만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아파트가 단순히 집일 뿐 아니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물론 아파트가 여러모로 살기 편한 건 맞다. 단지로 꾸며놓은 터에는 상가, 주차장, 공원 등 웬만한 시설은 다 있어서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안락함에 함정이 있다. 전화 한 통이면 가로등이 고쳐지고 택배까지 경비실에서 대신 받아주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그만이다.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들어앉아 각자 삶을 위한 열정을 불태우는 게 영리한 선택이다. 아파트가 많아지고 거기에 사는 사람이 늘수록 사회가 더 각박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사회를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표현한 강준만 교수의 책을 보고 아파트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국을 이런 사회로 만든 중심에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단지 형태로 개발된 아파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는 앞으로도 공적으로 차갑고 사적으로만 뜨거울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다른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아파트 단지 대신 다른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꿈꾸게 됐다. 딱딱한 건축 이야기로 이뤄진 책이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뜨끈해지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박태진 評

<PAPER> 2014년 2월호 '클립보드' 中


먼지 쌓인 블로그를 다시 매만지려 합니다. 그간 방치해뒀던 터라 손볼 데가 많네요. 내일부턴 퐁당퐁당 쉬는 날도 많으니 정리하기 좋을 거라 믿습니다. 게으르지 않게 무엇이든 해내는 것으로! 2017년 초여름의 다짐입니다.

'Dream Factory > 사진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카메라를 들고  (0) 2017.05.02

‘DNA의 세계’로 함께 모험 떠나실래요?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 DNA의 법칙(Transnational College of Lex 著, G브레인 刊)

2013년 01월 20일

 
이메일  프린트  오류신고 RSS주소복사


“염기서열 퍼즐 맞추는 기술 나왔다”

“‘유전자 가위’로 마음에 안 드는 유전자를 싹둑!”
“뚱뚱한 사람이 당뇨병에 잘 걸리는 이유 찾았다”

최근 한 달간 보도된 ‘유전자’에 관한 뉴스다. 이제 우리는 DNA 염기서열도 맞출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유전자를 잘라낼 수도 있으며,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도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우월한 유전자’ ‘성공DNA’처럼 사회문화적인 현상에도 응용할 정도로 유전자와 DNA는 대중적인 단어가 됐다. 

그런데 정작 DNA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고,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원리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가 자식에서 특성을 물려주는 유전 현상을 일으키는 게 유전자고, 이것을 구성하는 물질이 DNA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후 60년간 밝혀진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려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유전현상에 대한 설명은 ‘DNA가 생물 후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한 문장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문장 아래 숨은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내 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를 알고 싶은 건 인간 본연의 궁금증 중 하나니까 말이다. 

●일반인 모임, DNA의 세계에 도전하다

트래칼리(Transnational College of Lex)가 쓴 ‘물질·생명·언어까지 관통하는 질서 발견 : DNA의 법칙’은 바로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 속에는 DNA와 유전자, 염색체, 게놈 등의 개념은 물론 40억 년 동안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한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친절한 설명은 물론 도표와 그림, 실습자료까지 있어 누구나 이해하기 좋게 구성돼 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인 트래칼리에 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이뤄진 이 집단은 생물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모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등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인이 모여 생물학의 기초이자 세포와 DNA를 이해하는 과정을 써놓았다. 

그 덕분에 생물학의 ‘ㅅ’도 모르는 사람도 이 책을 손에 들면 세포란 무엇인지, 생물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단백질 합성 과정을 보여주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도 따라할 수 있어 놀이를 하는 듯한 재미도 준다. 

저자들이 기본서로 삼은 책은 두껍고 방대한 내용이 실린 ‘Molecular Biology of THE CELL’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주머니끼리 그들 눈높이에 맞는 수다도 떨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DNA와 진화 등을 바라보기도 한다. 연령, 배경지식,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틀 등 모든 것을 뛰어넘어 생명 자체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이다. 

●DNA 이중나선에 그렇게 깊은 뜻이?

이들의 탐험은 세포와 염색체, 유전자, DNA, 게놈을 정의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생물은 모두 세포로 이뤄져 있는데, 세포 속에 있는 핵이 유전을 담당한다. 핵 안에 염색체가 있는데, 염색체 안에는 DNA가 수납돼 있다. DNA 중에서 실제로 단백질을 합성하고 유전을 일으키는 부분이 유전자다. 게놈은 인간은 인간이 되고, 개구리는 개구리가 되는 유전정보의 한 세트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상세한 개념 정리 뒤에는 DNA의 발견부터 구조를 밝히고 복제되는 원리까지 자세히 소개된다. 각각의 발견이 모두 극적이지만 그중에서도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DNA를 이루는 네 가지의 염기는 반드시 두 개씩 짝을 이루며(A-T, C-G), 이중나선 구조로 이뤄져 복제가 가능하게 만든다. 

A-T와 C-G로 결합한 쌍은 크기와 모양이 같기 때문에 안정적인 이중나선 모양을 만든다. 모양만 안정적인 게 아니라 한쪽을 보면 다른 쪽도 알 수 있어 복제가 일어나는 기본이 된다. 만약 이중나선의 한 쪽에 A가 있다면 반대쪽에는 반드시 T가 있고, C가 있으면 맞은편에 G가 오게 되므로, 한쪽 정보만 알면 반대쪽도 만들 수 있는 것. 이들 이중나선의 염기서열에 따라 20개의 아미노산이 조합되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게 된다. 

●당신도 과학을 즐길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던 트레칼레는 이미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과 ‘양자역학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푸리에 함수와 양자역학에 대해서도 정복한 바 있다.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은 아무나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생각은 접게 된다. 

과학은 생각보다 재밌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즐거운 콘텐츠다. 이 책은 그걸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고등학교 졸업생도 아주머니, 할아버지도 관심만 있다면 다윈의 진화론, 멘델의 유전법칙, 생물학자와 화학자의 생기설 그리고 분자생물학의 시작, DNA가 왜 중요한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전문용어에 ‘쫄지’ 말고, 책 두께에 겁먹지 말자. 조금만 집중하면 당신도 DNA는 물론 자연을 이해하는 법칙을 알 수 있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제가... 힌트 한 가지 드릴까요?

사장님은요, 우리 누나 취향이 아니에요."

 
[밀양], 제 6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공식초청작, 이창동 감독, 송강호, 전도연, 쏟아지는 찬사 등에 더해 힌트를 한 가지 더 주자면 "박태진의 취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소재, 전도연과 송강호의 끝내주는 연기, 가슴 절절한 신애의 사연과 묵묵한 종찬의 보살핌이 한데 어우러져 볼 만한 영화가 탄생했으니 기쁜 일이다. 더불어 많은 이가 '용서'와 '구원'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다. (물론 이것도 못하는 영화가 많고 많지만;)

이 영화에는 '영화적임'이 뿜어내는 맛깔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영상, 현란한 음향, 절묘한 편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스토리의 전개도 그저 물에 물탄 듯 술렁술렁이다. 영화 속 장치가 은유하는 바를 찾는 것은 오히려 무의미하고, 손뼉을 칠만큼 절묘한 시츄에이션도 거의 없다. (딱 한 장면 있다 - '거짓말이야')

이야기는 흘러가고 있으며, 관객들은 지극히 수동적으로 신애을 바라봐야만 한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원망, 그리고 그녀만 찾지 못하는 비밀의 볕-종찬을 따라 2시간의 여행이 끝나면 당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인물에 공감했거나 허리가 아파서.

구원, 용서, 그리고 나를 비추는 따뜻한 볕. 세상을 살면서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들임에 틀림없다. 영화 한 편을 통해 치열한 삶의 속도에서 벗어나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밀양]이 극찬을 받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영화'라는 장르를 선택했어야 했을까. 물론 배우들의 수준급 연기는 볼만했지만, 주제를 깊이 표현하고 넓게 대화하기에는 '소설'이 더 적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적 미학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 [밀양]은 "박태진의 취향"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영화적 철학'이 좋은 당신이라면 200%만족할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감각보다 이성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사장님, 꽃 안 주세요?"
신애의 여동생이 결국엔 종찬의 편이 되었듯 [밀양]이라면 일정 부분 취향의 폭을 넓혀봐도 괜찮겠다 싶다.

선물
무지 오랜만에 홀로 극장을 찾았다. 졸업 2주년을 기념해서, 세 살을 맞은 나를 축하하며, 내가 나에게 좋은 영화 한 편 구경시키고 싶었다.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고른 영화, [기담]. '1942년 경성 안생병원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 셋'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좋았던 영화.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만났다. 한국영화 위기론아, 훠이훠이 물렀거라.


사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봉인된' 소녀와 묵묵히 외로웠던 의대 실습생, 박정남. 새 아빠를 사랑한 소녀와 그녀의 담당 의사, 이수인. 그림자가 없는 아내, 김인영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의사, 김동원. 이 주인공들은 모두 사랑에 목마른 존재들이다. 공허한 정남의 마음에 싸늘한 시체가 들어 온 것도, 온 가족이 죽어 버린 소녀에게 의사의 손길이 각별했던 것도, 그림자가 없는 죽어버린 아내지만 곁에 두고자 하는 동원도 모두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가지의 기이한 이야기 속에 필연적인 사건 전개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 ‘사랑’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놀라운 어떤 이야기, 그것이 바로 [기담]이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 그것에 대해 영화가 당신에게 묻는다. 사랑을 좇아 할 수 있었던 무한한 일들, 그것들이 줬던 행복과 고통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기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사람

영화 속 영혼들은 말이 없다. 정남이 만났던 소녀의 영혼, 소녀가 만났던 엄마, 새 아빠, 할머니의 영혼은 소리는 있을지언정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말을 한다. 정남도, 소녀도, 수인도, 인영도, 동원의 모습을 한 인영도 모두 말을 한다. 그들 모두는 마음을 표현하고 뜻을 전달하려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귀신이 되었다고 해서, 육신이 없다고 해서 표현할 마음도, 전달할 뜻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혼이 단지 사람들을 놀래려는 의도로 세상에 남았다고 한다면 그 존재의 가벼움을 어떻게 참을 수 있으리오.

결국 말이 없던 귀신들은 사람의 마음이 불러 낸 허상들이다. 우물에 빠진 수인이 살 수 있었던 마음의 힘이 바로 형님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정남과 사랑했던 소녀 귀신은 그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한 존재였고, 소녀가 만났던 엄마, 새 아빠, 할머니는 소녀의 죄책감이 스스로를 꾸짖는 도구였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영혼을 작동시키는 주체마저도 인간이다. 영혼마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쓸쓸하니까.


쓸쓸함
쓸쓸함이 인간에게 주는 공포. 인영이 혼자 했을 ‘그림자 놀이’를 떠올리며 검은 나비가 품었을 한에 대해 생각한다. 도저히 믿기 싫었을 동원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믿어야만 하는 쓸쓸함. 어쩌면 그런 것들이 영화 전체의 기술적 공포보다 더 커다란 두려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정전이 된 병원에서 촛불을 하나씩 나누어 들고 걸어가던 수인, 인영, 정남의 얼굴에 비치던 노란 생명의 불빛이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몫의 촛불을 지켜야 하는 세상, 그래서 쓸쓸하지만 그래서 도전할 만한 이곳에 슬픈 우리가 존재한다.

사랑이란, 사람이란, 그리고 쓸쓸함이란 것에 대한 슬픔이 있어서 여느 공포 영화보다 괜찮은 영화, [기담]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