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주어서 참말로 고마운 그 이야기들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 서진영  

참 고마운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디 손 뻗을 데 없이 곤궁한 처지인 내게 곁을 내주고, 초라하고 구석진 마음을 달래줬던 사람이다. 내가 옹졸한 탓에 한동안 연락도 뜸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조차 귀한 기회를 선물했다. 일 년 동안 전통공예품을 만드는 사람 여섯 명을 만나고 글을 써보라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을 추천했다. 내용도 구성도 참고할 수 있을 거라고 살뜰하게 마음을 써준 것이다. 이렇게 읽게 된 책에는 일종의 팔도 여행기가 펼쳐져 있었다. 열두 명의 공예 무형문화재 찾아 서천(한산모시), 나주(쪽 염색과 소반), 서울(바느질), 영덕(옹기), 단양(사기), 수원(창호), 통영(발과 나전), 남원(백동연죽), 곡성(낙죽장도), 청주(배첩)를 밟았으니 전국 팔도를 웬만큼 둘러본 셈이다. 그러나 글들은 여느 여행기와 달랐다. 잊혀져가는 공예품과 그를 만드는 장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남다름을 빚어내고 있었다. 조상들이 입고, 먹고, 살아가는 데 사용했을 물품은 고왔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것들을 이날 이때껏 손수 만들며 전통을 이어온 장인들의 소신에는 머리가 숙여졌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을 다해 물건을 만드는 어르신들의 솜씨와 삶은 공예품 못지않게 빛이 났다. 그래서 한 장씩 넘길수록 몰라주어서 미안한 마음이 커졌지만 알게 되어서 기쁜 마음도 늘어났다. 어설픈 관광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캐낸 서진영 작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마 책 속에 소개된 장인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법이니까. 이 책으로 그런 사람이 몇 곱절로 늘었으니 더욱 좋지 않을까 넘겨 짚어본다.  박태진 評

<PAPER> 2014년 8월호 '클립보드' 中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지구의 정복자 | 에드워드 윌슨 

수학이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라 과학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런 나를 과학의 세계로 이끈 책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다. 이 책에는 진화가 인간이나 인류 단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벌어진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들어 있었다.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고,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혈연관계에 있는 남을 돕는 성향이 나타난다는 논리였다. 불편했지만 그럴 듯 했다. 이 논리에 이끌려 과학기자가 됐고 한참 과학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일반인으로 돌아올 즈음 서점에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이 등장했다. 시뻘건 띠지에 “‘이기적 유전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명한 문구를 써놓은 터라 놀라서 책을 펼쳤다.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진화시킨 주된 힘이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신체적 약점이 많은 인류가 오늘날까지 진화한 비결은 역할을 나누고 소통하고 돕는 고도의 사회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개인으로 봤을 때 이기적인 성향은 당장의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집단 전체로 보면 이타적 성향을 가진 자가 많아야 전체적인 생존과 번식에 덕이 된다. 그러니 이기성과 이타성이 여러 환경에서 적절하게 선택돼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타적 성향이 인류를 진화시켰다는 대목에 한참 동안 눈이 머물렀다. 누구를 위하고 돕는 게 지금의 인류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니 뭉클해졌다.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먼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많이 나누고 돕고 마음을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  박태진 評

<PAPER> 2014년 4월호 '클립보드' 中


사는 공간이 생각의 틀을 만든다

아파트 :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 박철수

아파트,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60%가 사는 집이다. 똑같은 넓이와 공간 배치로 이뤄진 성냥갑 같은 건축물이지만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아파트가 단순히 집일 뿐 아니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물론 아파트가 여러모로 살기 편한 건 맞다. 단지로 꾸며놓은 터에는 상가, 주차장, 공원 등 웬만한 시설은 다 있어서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안락함에 함정이 있다. 전화 한 통이면 가로등이 고쳐지고 택배까지 경비실에서 대신 받아주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그만이다.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들어앉아 각자 삶을 위한 열정을 불태우는 게 영리한 선택이다. 아파트가 많아지고 거기에 사는 사람이 늘수록 사회가 더 각박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사회를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표현한 강준만 교수의 책을 보고 아파트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국을 이런 사회로 만든 중심에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단지 형태로 개발된 아파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는 앞으로도 공적으로 차갑고 사적으로만 뜨거울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다른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아파트 단지 대신 다른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꿈꾸게 됐다. 딱딱한 건축 이야기로 이뤄진 책이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뜨끈해지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박태진 評

<PAPER> 2014년 2월호 '클립보드' 中

‘DNA의 세계’로 함께 모험 떠나실래요?

[과학기자가 읽는 과학책] DNA의 법칙(Transnational College of Lex 著, G브레인 刊)

2013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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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서열 퍼즐 맞추는 기술 나왔다”

“‘유전자 가위’로 마음에 안 드는 유전자를 싹둑!”
“뚱뚱한 사람이 당뇨병에 잘 걸리는 이유 찾았다”

최근 한 달간 보도된 ‘유전자’에 관한 뉴스다. 이제 우리는 DNA 염기서열도 맞출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유전자를 잘라낼 수도 있으며,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도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우월한 유전자’ ‘성공DNA’처럼 사회문화적인 현상에도 응용할 정도로 유전자와 DNA는 대중적인 단어가 됐다. 

그런데 정작 DNA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고,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원리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가 자식에서 특성을 물려주는 유전 현상을 일으키는 게 유전자고, 이것을 구성하는 물질이 DNA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후 60년간 밝혀진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려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유전현상에 대한 설명은 ‘DNA가 생물 후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한 문장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문장 아래 숨은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내 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를 알고 싶은 건 인간 본연의 궁금증 중 하나니까 말이다. 

●일반인 모임, DNA의 세계에 도전하다

트래칼리(Transnational College of Lex)가 쓴 ‘물질·생명·언어까지 관통하는 질서 발견 : DNA의 법칙’은 바로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 속에는 DNA와 유전자, 염색체, 게놈 등의 개념은 물론 40억 년 동안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한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친절한 설명은 물론 도표와 그림, 실습자료까지 있어 누구나 이해하기 좋게 구성돼 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인 트래칼리에 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이뤄진 이 집단은 생물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모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등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인이 모여 생물학의 기초이자 세포와 DNA를 이해하는 과정을 써놓았다. 

그 덕분에 생물학의 ‘ㅅ’도 모르는 사람도 이 책을 손에 들면 세포란 무엇인지, 생물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단백질 합성 과정을 보여주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도 따라할 수 있어 놀이를 하는 듯한 재미도 준다. 

저자들이 기본서로 삼은 책은 두껍고 방대한 내용이 실린 ‘Molecular Biology of THE CELL’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주머니끼리 그들 눈높이에 맞는 수다도 떨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DNA와 진화 등을 바라보기도 한다. 연령, 배경지식,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틀 등 모든 것을 뛰어넘어 생명 자체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이다. 

●DNA 이중나선에 그렇게 깊은 뜻이?

이들의 탐험은 세포와 염색체, 유전자, DNA, 게놈을 정의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생물은 모두 세포로 이뤄져 있는데, 세포 속에 있는 핵이 유전을 담당한다. 핵 안에 염색체가 있는데, 염색체 안에는 DNA가 수납돼 있다. DNA 중에서 실제로 단백질을 합성하고 유전을 일으키는 부분이 유전자다. 게놈은 인간은 인간이 되고, 개구리는 개구리가 되는 유전정보의 한 세트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상세한 개념 정리 뒤에는 DNA의 발견부터 구조를 밝히고 복제되는 원리까지 자세히 소개된다. 각각의 발견이 모두 극적이지만 그중에서도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DNA를 이루는 네 가지의 염기는 반드시 두 개씩 짝을 이루며(A-T, C-G), 이중나선 구조로 이뤄져 복제가 가능하게 만든다. 

A-T와 C-G로 결합한 쌍은 크기와 모양이 같기 때문에 안정적인 이중나선 모양을 만든다. 모양만 안정적인 게 아니라 한쪽을 보면 다른 쪽도 알 수 있어 복제가 일어나는 기본이 된다. 만약 이중나선의 한 쪽에 A가 있다면 반대쪽에는 반드시 T가 있고, C가 있으면 맞은편에 G가 오게 되므로, 한쪽 정보만 알면 반대쪽도 만들 수 있는 것. 이들 이중나선의 염기서열에 따라 20개의 아미노산이 조합되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게 된다. 

●당신도 과학을 즐길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던 트레칼레는 이미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과 ‘양자역학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푸리에 함수와 양자역학에 대해서도 정복한 바 있다.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은 아무나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생각은 접게 된다. 

과학은 생각보다 재밌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즐거운 콘텐츠다. 이 책은 그걸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고등학교 졸업생도 아주머니, 할아버지도 관심만 있다면 다윈의 진화론, 멘델의 유전법칙, 생물학자와 화학자의 생기설 그리고 분자생물학의 시작, DNA가 왜 중요한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전문용어에 ‘쫄지’ 말고, 책 두께에 겁먹지 말자. 조금만 집중하면 당신도 DNA는 물론 자연을 이해하는 법칙을 알 수 있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그렁그렁, 크지도 않은 눈망울에 커다란 물방울이 고였다. 펑펑, 흘러내리지 않고, 그렁그렁 고드름처럼 매달려만 있다. ‘못’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60억 인류를 생각하면서, 지구의 미래를 위한 ‘언인스톨’을 떠올리면서, 울고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흘려버릴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 그렇게 담담하게 흘러가는 문체, 그리고 박민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나를, 인류를, 지구를 정말로 ‘언인스톨’할 때가 되었거나 박민규가 천재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왕따와, 인류와, 지구와, 탁구의 이야기 - 내가 당신들을 만난 것에 감사드린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왕따라면 내 주위에도 있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이 특별한 인간의 눈 밖에 나 특별하게 정신적으로 다쳤던 아이. 그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두려웠다. 다수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닐지, 함께 왕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모두와 친구가 되는 것, 그래서 아무와도 친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다수인 척 할 수 있었고, 항상 소수의 곁에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아니 사악한 것이었다.
 
  용감하지 못했던 나를 돌이켜 보며 ‘못’과 ‘모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또 말한다. 그 때 나와 그 아이에게도 탁구라는 것이 있었다면, ‘핑퐁’ 대화의 틀을 이용해 소통할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덜 사악했을 것이고, 그는 좀 더 든든하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정말 미안해’라는 핑을 날리면 ‘괜찮아’라는 퐁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비겁하고 비열한 나에게 손 내밀어 준 그에게 ‘고마워’라고 핑, 가면 속에서 스스로 왕따하고 있었던 나에게 ‘괜찮아’라고 퐁, 혼자라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친다.
 
  왕따에게 주어진 탁구, 그것은 썩 괜찮은 위로다. 가볍고 작은 공은 자신감을 주며, 격하게 부딪치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날리는 게임 방식은 그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몸이 슬슬 풀리고 호흡이 맞춰지면 ‘핑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그 옛날 미국과 중국마저 그랬던 것처럼. 핑퐁-작지만 밝게 빛나는 공을 통해서 작가는 왕따를 위로하고 싶었던 게다. 차라리 못이면 좋겠다던 ‘못’에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게다. 그래서 못과 모아이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친다.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나도 종종 한다. '아무리 괜찮아 잘 될 거야 나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도, 잘 될 것 같은 미래나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명품으로 치장을 한 발랄한 부익부와 굶주림으로 밥을 먹는 흐릿한 빈익빈의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권을 가진다던 사회 교과서의 구절들은 그저 성경 말씀이 된 요즘, 차라리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나에게 세상은 누구나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배울 수 있고, 치료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꿈을 꽃 피울 수 있는 곳,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여기는 그런 곳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제도권 교육을 마치고 세상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부익부가 아니면 빈익빈이 되는 세상을 내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열심히 핑. 퐁. 핑. 퐁. 탁구공을 날려보아도 부지런히 핑. 퐁. 핑. 퐁. 탁구공은 돌아오므로, 세계는 듀스 포인트로 변하지 않고 주욱 부익부 빈익빈으로 달려온 것을 모르고 말이다.
 

  9볼트짜리 해악을 가진 인간들이, 매수당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왜 사는지도 모른 채 던져진 지구라는 공간은 과연 괜찮지 않은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못’과 ‘모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노인은 매수당하기를 기대하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다수인 척 노력하고, 대부분의 인류는 왜 사는지조차 모르며 살아간다. 그러니 ‘핼리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혜성을 기다리는 간절함만큼 세계는 부패했으니 역시 듀스 포인트다.

    그렇다면 선택은 한 가지, 지금껏 지구를 지배해왔던 거대한 시스템을 제거하는 것이다. 선택권은 지금껏 소외되었던, 배제되었던,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못’과 ‘모아이’에게 있다. ‘지금 이대로, 변함없이’를 선택할 만큼 부패하지 않은 중학생 둘은 언인스톨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서서히 언인스톨되고 있다.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인류 또한 사라질 것이다.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진행된 지구 온난화,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인한 기상 이변은 그 작은 증거들이며, 인류가 지금 이대로, 변함없는 태도로 세계를 일궈나간다면 그 진행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잘 된 일이라고, 인류가 뿌린 씨를 거두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려니 미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미련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혹시 언인스톨에 반대하거나 지금 이대로의 세계에 애정이 있는 인류가 있다면, 누구라도, 이제라도,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다시 ‘못’과 같은 아이가 나타나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며 울지 않도록.

2007년 상반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했던 '제8회 우수도서독후감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글이다. 지금은 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싶기는 하지만. 그 때 수상평에 "「핑, 퐁, 핑, 퐁 - 속죄하는 마음으로」(달려라 하니)는 박민규의 소설을 자기 세대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읽어냈지만 그 깊이가 충분히 확보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솔직담백한 이야기 전개에 점수를 주었다. "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시 내 눈엔 깊이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는 것만 들어왔는데 이제는 자기 세대의 방식으로 재밌게 읽어 냈다는 게 보인다. / 파란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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