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에도 ‘베이비붐’ 세대가 있다?

[KISTI의 과학향기]

2013년 04월 01일

 
이메일  프린트  오류신고 RSS주소복사


‘58년 개띠’. 어디 가서 머릿수로 밀리지 않는 나이다. 58년 개띠를 포함해 1955~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붐 세대’라 부른다. 약 90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은 우리나라의 주요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이끌어왔다. 


5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면서 한국경제의 주름살도 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퇴직할 경우 생산과 소비 모든 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수명을 생각하면 중장년층 스스로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이 깊어진다. 청년 세대의 극심한 실업난 못지않은 위기의 그림자가 그들에게도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저출산국가여서, 고령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60세가 넘는 2027년경이 되면 노인인구 비율이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까지 한다. 이 때가 되면 사회 전체에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 벌써부터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둥산을 단숨에 푸른 숲으로 변신시킨 우리나라 산림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있다. 1970년대에 국가 전체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사업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당시 심었던 나무들은 2013년 현재 40년생 내외의 나이를 가지게 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 숲의 평균 나이도 30년 후반으로 이와 비슷하다. 1970년대 심은 나무들이 ‘포레스트붐 세대’ 정도 되는 셈이다.

2010년 산림기본통계에는 나무의 나이별로 차지하고 있는 면적에 대한 자료가 있는데, 30년생 이하가 31.7%이고 31년생 이상이 65.1%이다. 물론 이들 나무는 대부분 40년 미만이다. 숲도 사람들처럼 어린나무에 비해 어른나무가 많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노인나무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사람의 경우 청년이나 장년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나무는 오래된 나무가 더 쓸모가 있다. 임업에서는 가슴높이의 나무줄기의 지름에 따라 숲의 이름을 붙이는데, 25cm 미만이면 어린나무 숲, 즉 ‘유령림’이라고 하고 26~40cm 미만이면 ‘장령림’이라고 한다. 40cm 이상이면 ‘노령림’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가 돼야 실제로 목재로 쓰기 좋은 상태가 된다. 

현재 우리 숲은 ‘장령림’ 정도여서 나라 전체에서 숲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도 목재를 생산할 수 있는 면적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꾸준히 숲을 가꿔온 덕분에 앞으로 쓸만한 목재가 많아질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숲 가꾸기’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나무 사이에 적당한 공간을 주는 솎아베기로 숲을 가꾼 산림과 그대로 둔 산림을 비교한 결과 그동안 자란 지름이 각각 7cm와 2.5cm로 3배 정도 차이가 났다. 아직 어린나무 숲이 많은 우리 산림에 숲 가꾸기를 한다면 지름을 더 빨리 키워 쓸모 있는 목재를 빨리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무에 가지치기를 해주는 숲 가꾸기 방식은 옹이가 없는 고급 목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비슷한 연령대가 밀집된 우리 숲이 가진 한계점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한꺼번에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면 전체 경제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비슷하다. 우선 비슷한 크기의 나무가 붙어 있으면 산불에 취약한 숲이 되기 쉽다. 나무 크기가 비슷하므로 한번 옮겨 붙은 불이 확산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목재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시기가 같아지면 숲이 꾸준한 상태로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린 나무가 적은 산에서 큰 나무를 베어버리면 산이 다시 벌건 맨몸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이 새로 떠오르고 있다. 어린 나무와 중간 크기의 나무, 큰 나무가 골고루 함께 자라는 건강한 숲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발달한 숲은 다양한 나이와 종류를 가진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어린나무가 자라 성숙한 숲이 되면 나무의 활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일부 늙은 나무가 죽고, 이 자리에 어린나무가 자연스럽게 다시 자라 빈 공간을 다시 차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정한 공간에 다양한 나이를 가진 나무들이 섞일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숲을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하려면 장령림 일부를 솎아 베어 우량목재로 기르는 동시에, 다른 나무들도 들어와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또 노령림이나 새롭게 만들어야 할 숲이 있다면 과감하게 벌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공간에 다시 어린 숲을 조성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전쟁 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아기들처럼 1970년대 치산녹화(治山綠化) 운동으로 우리 숲에도 어린나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베이비붐 세대가 우리나라를 풍요롭게 일군 것처럼 30년 넘게 자란 나무들은 우리 산을 푸르고 울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무너지는 바람에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됐다. 사람들은 기형적인 인구구조와 빨리 다가올 노령사회에 대비해야 하고, 숲은 지속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는 그대로의 의미를 거뒀으니 이제 앞에 닥친 일을 현명하게 풀 차례다. 

베이비붐 세대도, 포레스트붐 나무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란 결말을 맺을 수 있길 바란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삼각팬티도 특허였다고?! 별난 발명이야기

[KISTI의 과학향기]

2011년 11월 28일

 
이메일  프린트  오류신고 RSS주소복사

“이거 또 오디션 열풍이구만! 매회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는다던데? 우리는 뭐 색다른 거 없나?”

KHBS 제작팀의 분위기가 또 심상치 않다. 경쟁사들이 금요일 저녁에 방송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때 천진난만하기로 소문난 허특 PD가 자신만만하게 기획안을 내놓는다. 제목은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이다.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 이거 뭐야? 이젠 경쟁사 프로그램 이름까지 따라해? 허 PD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여기저기서 이럴 줄 알았다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 허 PD 때문에 기획회의로 밤을 샐지도 모르겠다. 

“예, 국장님! 발명이나 특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뭐 바꾸셔도 될 것 같고요. (긁적긁적) 여하튼 발명이야기 재미있습니다!”
“뭐가 재밌다는 거야?!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재밌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발명을 알고나 싶어 하겠어?”
“아, 저는….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것도 특허 받은 제품이 많고, 또 특허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도 꽤 재미있어요.”

허 PD의 해맑은 표정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김 국장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우선 들어나 보자.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나 특허라고 하면 전화기나 전구의 발명처럼 굉장히 거창하고 유명한 이야기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 또 일회용 밴드, 삼각팬티, 옷핀(안전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사용하는 것도 발명품입니다.
“그래?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도 발명품이었어?”

“네. 원뿔형태의 아이스크림콘은 1903년 12월 13일에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치오니(Marchiony)가 특허권을 획득한 것인데요. 이 사람은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수레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답니다. 처음에는 그릇에 담거나 종이에 둘둘 말아서 아이스크림을 줬는데 뒤처리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와플조각 같은 빵 과자로 아이스크림 아래를 감싸는 콘을 생각해 냈죠. 마르치오니는 아이스크림콘에 대해서 곧바로 전매특허를 내고 아이스크림 세계에 새 역사를 열었던 거예요. 어때요? 다들 잘 모르셨죠?”

이이스크림콘처럼 간단한 것에 특허가 있을 줄은 잘 몰랐다. 하지만 특별한 사례 하나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김 국장은 다른 것은 없냐고 허 PD를 보챘다.

“물론 있죠! 삼각팬티와 일회용 밴드, 옷핀이 발명된 이야기들은 좀 감동적이에요. 우선 삼각팬티는 1951년 일본에서 특허출원 됐어요. 발명자는 놀랍게도 손자를 돌보던 사쿠라이 여사였어요.
“할머니가 삼각팬티를 발명을 했다고? 왜?”

“사쿠라이 여사는 늘 손자를 돌보고 있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손자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고 있는 걸 본 거예요. 당시에는 속옷이 반바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겉옷 입기에도 불편하고 더운 여름에는 특히 더 불편했다고 해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사쿠라이 여사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죠!”
“그게 뭔데?”
“속옷은 단지 가리기만 하면 된다.”

풉!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굴할 허 PD가 아니었다.

사쿠라이 여사는 데드론이라는 천으로 만든 헌 자루를 싹둑 잘라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내고 꿰매서 삼각팬티를 만들었어요. 가볍고 편리한 훌륭한 속옷이 탄생한 거죠. 사쿠라이 여사는 이 팬티의 특허를 받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삼각팬티로 갈아입었어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대히트를 친 거예요!”
“정말 대박특허가 됐겠구만. 아이디어는 작은 거였지만 말이야.”

일회용 밴드는 아내에 대한 사랑 덕분에 탄생한 거였어요.
“아내에 대한 사랑?”

“네, 1920년대 미국에 얼 딕슨(Earle Dickson)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요. 딕슨의 아내는 유난히 요리에 서툴러서 손을 많이 다쳤다고 합니다. 딕슨이 그때마다 붕대와 반창고를 가져와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죠. 하지만 자신이 없을 때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아내의 손에 붕대와 반창고를 붙였던 경험을 살려서 치료용 테이프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안에 거즈를 작게 접어 가운데 부분에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치료용 테이프가 너무 끈적끈적해서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깨끗이 떨어지지도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직물인 크리놀린을 찾아냈습니다. 표면이 매끄러워 테이프가 깨끗이 떨어지고, 빳빳해서 보관하기도 좋았어요.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당시 딕슨이 다니던 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상품화하게 됐어요. ‘밴드에이드(Band-Aid)’라는 이름으로요.
“허허. 그거 참 대단한 아내 사랑이구만.”

“에이, 그 정도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특허권으로 벌 돈보다 애인을 선택한 ‘로맨스 발명’도 있는 걸요!”
“특허권과 애인을 바꾸다니? 대체 어떤 발명품인가?”
“바로 옷핀이에요. 1840년 12월 영국에 월터 헌트(Walter Hunt)라는 청년이 옷핀을 발명한 사람인데요. 그는 헤스타라는 아가씨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해요. 헌트는 헤스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헌트는 물러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헤스타의 아버지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 발명품 만들라는 건가?”
“아뇨. 10일 안에 1000 달러를 벌어 오라는 거였어요. 헌트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눈앞이 막막했죠. 밤새 궁리해도 특별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한 핀’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갑자기 웬 안전한 핀인가?”
“당시 미국인들은 부활절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 핀으로 리본을 꽂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바늘 핀은 리본을 단단하게 고정시키지도 못하고, 찔릴 위험도 있었어요. 헌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9일째 되던 날 헌트는 안전핀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는 헤스타의 손을 잡고 특허출원을 마치고 리본가게로 안전핀을 팔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1000 달러를 받고 특허를 팔았죠.”

“저런…. 안전핀 특허를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부자가 됐을텐데!”
“헌트에겐 특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던 거죠. 결국 두 사람은 약속대로 결혼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도 백만장자가 됐다고 해요.”

허 PD가 말을 마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박수가 나왔다. 발명과 특허 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허 PD, 재밌게 잘 들었네. 결국 ‘필요’가 아니라 ‘사랑’이 발명의 어머니였군. 이런 이야기를 잘 소개할 수 있는 포맷은 없을까? 그거 고민해서 가져와. 그러면 설날 특집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자네도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발명해야 할 거 아닌가? 허허허.”
“와! 정말요? 국장님, 감사합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 허 PD가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있다. 김 국장은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발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그대는 모두 발명가가 아닌가 말이다. 기특한 허특 PD 덕분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발명’을 꿈꾸게 되면 좋겠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1. 사랑해,태진 2013.07.23 21:10 신고

    삼각팬티와 일회용 밴드, 옷핀도 특허 상품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특허 역시 사랑에서 싹튼답니닷 ^^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농부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지는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나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이다. 윤 초시네 여자아이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안 그래도 흰 얼굴을 가진 소녀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선 비를 피해 근처 수숫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소녀를 웃게 하려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시작한다.

“비가 참 많이 내린다. 이 많은 비가 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

소녀가 입을 열었다. 비 내리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다. 다행이 어제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다.

“비의 고향은 바다야. 바닷물이 증발해서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만들어지고, 구름에서 비가 만들어지는 거지.”
“그렇구나. 그럼 바다는 처음부터 있었던 거야?”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바다가 없었대.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매우 뜨거운 상태였으니까 물이 없었을 거라고 해. 지구가 태어난 뒤로 시간이 흐르면서 화산활동이 생겼고, 이때 많은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단다. 수증기가 다시 비로 변해 내리면서 지구도 식었고, 바다도 만들어졌대.”

“아, 그럼 바다보다 비가 먼저인 셈이네.”
“원래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바닷물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다시 비로 내리는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어.
“비가 내리는 건 사람의 삶과도 비슷하구나. 사람도 매일 학교나 일터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잖아.”

소녀가 잠시 생각에 잠겼고, 대화가 끊어진다. 주룩주룩 소나기 내리는 소리만 가득한 수숫대 안에서 나는 다시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소녀를 웃게 만들고 싶었으니까.

“구름에서 어떻게 비가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지 않니?”
“응, 이야기해 줘!”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이나 아주 작은 얼음덩이(빙정)는 수백만 개가 합쳐져야 빗방울 하나 정도 크기가 돼. 또 일단 구름이 만들어지면 구름 안의 공기는 계속 위로 올라가려고 해. 반대로 구름 속의 작은 물방울은 무거워지면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고 말이야.”

“그러면 물방울끼리 서로 부딪힐 수도 있겠네?”
“맞아. 물방울끼리 부딪히면 합쳐지는 일도 생기는데, 이때 물방울이 커져서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지.”
“눈?”

눈이라는 이야기에 소녀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래. 구름속의 작은 물방울들은 구름의 온도에 따라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해.
“정말? 눈을 만드는 구름이나 비를 만드는 구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응, 더운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구름의 온도는 0℃보다 높아. 이렇게 온도가 높은 구름에는 작은 얼음덩이(빙정)가 없단다. 이런 구름을 ‘따뜻한 구름’이라고 불러. 따뜻한 구름 안에서는 여러 크기의 물방울이 서로 부딪히고 합쳐진단다. 물방울 크기가 충분히 커지면 비가 돼서 땅으로 떨어지게 되지. 이렇게 ‘따뜻한 구름’에서 비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병합설’이라고 불러. 아프리카 같은 열대 지방에서는 ‘따뜻한 구름’만 있기 때문에 눈이 내리지 않고 비만 내린단다.”

“그럼 눈은 ‘차가운 구름’에서 만들어지는 거야?”
“맞아! 우리나라 겨울에 생기는 구름이나 시베리아 같은 지방의 구름이 ‘차가운 구름’이지. 이 구름의 온도는 0℃보다 낮아. ‘차가운 구름’의 아랫부분은 작은 물방울로 이뤄져 있지만, 윗부분은 작은 얼음덩이(빙정)로 이뤄졌단다. 중간 부분에는 작은 물방울과 얼음덩이가 섞여 있고 말이야.”

“얼음덩이가 있다는 게 ‘따뜻한 구름’과 다른 점이구나.”
“그래. ‘차가운 구름’ 속에 있는 물방울이 수증기가 되면 얼음덩이에 달라붙게 돼. 그러면 얼음덩이가 점점 커진단다. 이때 무거워진 얼음덩이가 중력을 받아서 아래로 내려오면 눈이 되는 거야. 물론 눈이 내리는 지역의 온도가 높으면 녹아서 비로 변하기도 하지.”

내 이야기가 끝나자 소나기를 퍼붓던 하늘이 맑아졌다. 소녀의 얼굴에도 하늘빛처럼 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생각해보니 오늘 내린 소나기는 ‘따뜻한 구름’이었겠다. 이번 여름엔 ‘따뜻한 구름’도, 따뜻한 친구도 모두 만난 셈이네. ‘차가운 구름’이 눈을 내릴 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겠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오는 동안 차가운 구름에서 하얀 함박눈이 쏟아져 내릴 겨울을 상상하며 소녀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1. 모르세 2011.10.08 22:50

    오랜만에 들러 잘보고 갑니다.

“난 내 머리 무게가 궁금해~.”

머리 큰 걸로 유명한 개그맨, 컬투 김태균이 자신의 머리를 체중계에 올렸다. 7.8kg! 앞서 머리 무게를 쟀던 정찬우보다 0.8kg이 더 나갔다. 보통 사람들의 머리 무게가 4kg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다. 2011년 6월 13일에 방송된 SBS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이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장면을 보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머리 크기가 지능과 상관이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컬투의 입담과 재치도 혹시 남들보다 크고 무거운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뇌가 클수록 머리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원시 인류에 비해 현생 인류의 평균 뇌 용량은 2~3배 커졌기 때문이다. 400만년 전에 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량은 380~450cc인데, 이후에 나타난 호모 하빌리스의 뇌 용량은 530~800cc로 커졌다. 완전히 직립 보행한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량은 900~1,100cc이고 20만년~5만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량은 1,300~1,600cc였다.

19세기 미국의 자연인류학자 사무엘 조지 모턴(Samuel George Morton)은 아예 ‘두개골이 클수록 지능이 좋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모은 인종별 두개골 약 1,000개의 크기를 쟀다. 그는 작은 겨자씨를 두개골에 가득 채운 다음 그것을 실린더에 부어 부피를 측정했다. 하지만 겨자씨의 크기가 모두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지름 0.125인치의 납으로 된 탄환으로 부피를 쟀다.

모턴의 연구 결과 두개골 크기는 백인이 가장 크고 흑인이 가장 작았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두 인종의 중간이었다. 모턴은 이를 이용해 ‘뇌가 큰 백인종이 지능도 가장 높다’라는 주장을 폈다. 물론 그의 연구결과는 과학적 인종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과학자의 주관이 연구에 개입된 사례로 남겨졌다.

하지만 2011년 6월 과학저널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실린 논문은 모턴의 연구를 옹호하고 나섰다. 적어도 모턴이 연구결과를 조작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연구팀이 모턴이 사용한 두개골을 다시 측정한 결과 모턴의 측량이 대부분 정확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두개골이 클수록 지능도 높다’는 주장까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 뇌 용량보다 중요한 건 ‘대뇌피질’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보다 작았다고 알려졌다. 또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인 아나톨 프랑스의 뇌 용량은 1,000cc인데 비해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뇌 용량은 2,230cc였다. 두 사람은 모두 문학 천재로 불리지만 두개골 용량이 현저히 다른 것이다. 또 2004년 10월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된 ‘난쟁이 인간’의 화석도 뇌가 클수록 지능이 높다는 생각에 반론을 제기한다.

키가 1m로 작은 이 화석에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가 생존했던 시기는 2만 5,000여년 전으로 추정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살던 시기와 겹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의 두개골이 무척 작다는 점이다. 두개골 크기로 짐작한 뇌 용량은 400cc 정도. 하지만 주변에 정교한 화살촉과 돌칼이 함께 발견돼 지능은 호모 사피엔스 수준으로 똑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능과 관계있는 것은 무엇일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대뇌피질’에 주목했다. 대뇌피질은 대뇌 표면의 회백질로 이루어진 부분인데 화석의 주인공은 이 부분이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언어를 이해하는 영역으로 알려진 ‘측두엽(대뇌피질 옆부분)’이 크고 학습과 판단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대뇌피질 앞부분)’이 많이 접혀있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뇌는 침팬지의 뇌와 비슷한 용량이지만 지능은 훨씬 발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뇌피질 두께와 지능지수(IQ)에 관한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가 어린이 307명을 대상으로 대뇌피질의 발달 과정을 조사했다. 지능지수가 평균보다 높은 아이들은 7살 정도까지 대뇌피질이 매우 얇았고 12살이 되면서 급속도로 두꺼워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지능지수가 평균 정도인 아이들은 처음부터 대뇌피질이 두꺼운 편이었다. 얇은 대뇌피질이 두꺼워지는 과정에서 지능지수가 점차 발달한다는 이야기다.

● 인간의 뇌는 작아지는 중…효율의 논리

최근에는 인간의 뇌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자주 나오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진화 전문가인 마르타 라르 박사팀은 인류의 체구와 뇌 크기가 선사시대보다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2011년 6월 영국 왕립협회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만년 전 80∼85kg이었던 인간의 몸무게가 현재 평균 70∼79kg으로 줄었고 두뇌 용량도 크로마뇽인은 1,500cc였지만 현대인은 1,350cc로 작아졌다. 150cc정도 줄어든 두뇌 용량, 혹시 인류의 뇌가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르 박사는 이 의문에 대해 ‘뇌 크기가 줄어드는 것도 진화의 일부분으로 봐야 한다’고 답한다. 인간의 뇌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쓰도록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고 분업화되면서 직접 고민하고 생각하는 활동이 줄었다는 게 현재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체형이 직립에 적합하게 바뀌고 뇌 용량이 커진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결국 뇌 용량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뇌 크기만으로 지능을 얘기할 수는 없다. 뇌 크기가 지능이나 뇌의 복잡성과 비례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사람의 뇌 크기와 지능의 관계를 속 시원히 밝힌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뇌 크기가 지능과 비례한다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자. 오랜 세월 동안 멋진 문명을 이룬 인류의 지능이 단순히 뇌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도 사실 이상하지 않은가.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1. 모르세 2011.07.14 00:48 신고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시간이 되세요

‘배고픈 지구를 위한 과학.’

얼마 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홈페이지에 이런 제목의 짧은 동영상이 실렸습니다. 시작 장면은 빈 그릇과 숟가락인데, 곧 과자 상자에서 지구가 나와 그릇에 담깁니다. 지구 주변에는 3대의 인공위성이 빙글빙글 돌고 있죠. 배고픈 지구와 인공위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만남입니다. 이 동영상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동영상 캡쳐 : NASA



지난 2008년 세계는 옥수수 가격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평소보다 2배 정도 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먹을 곡식뿐만 아니라 물론 소나 돼지에게 먹이는 사료까지 덩달아 비싸졌죠. 사료가 비싸지니 고기 가격도 올랐고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 영향은 우리 생활 전체로 전해졌습니다. 다른 물건 가격까지 모두 올라 세계 경제 전체가 뒤흔들리게 된 것이죠. 옥수수 가격이 세계 경제까지 변화시키다니!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현상은 이제 ‘애그플레이션’이라 이름 붙여졌고, 전 세계는 여기에 대비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곡식 값이 오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먹을 사람은 많은데, 곡식이 충분하지 않아서죠. 소나 돼지의 사료로, 또는 석유 대신 사용할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 재료로 곡식이 이용되다보니 정작 사람이 먹을 양이 줄어든 것입니다. 또 기후변화 때문에 가뭄이나 폭우 같은 이상 현상이 일어났고, 이것이 곡식의 생산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학자가 나서야 합니다. 영양분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슈퍼옥수수나 병해충에 강한 벼나 밀 등을 만드는 거죠. 이런 일에는 생명공학자가 제격입니다. 또 지구온난화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도 도움을 줄 수 있죠. 그런데 인공위성이나 로켓을 연구하는 우주과학자는 이러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NASA ‘광합성 지도’의 모습. 붉은 빛이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일수록 광합성이 활발하게 일어난다.(사진출처 : NASA)



NASA는 6월 초에 발표한 ‘광합성 지도’로 여기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광합성 지도’는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 내는 붉그스름한 빛(형광)을 재서 지도로 만든 것인데요. 이것을 보면 전 세계에 있는 식물의 광합성을 살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지구의 북쪽 부분은 여름날, 광합성이 활발한 7월에 산이나 들에서 형광이 강하게 표시됩니다. 반대로 12월에는 지구의 남쪽 부분이 여름을 맞아 형광이 강하게 나타나죠.

광합성은 식물이 영양분을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식물에는 ‘엽록체’라고 불리는 기관이 있는데요. 여기서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를 영양분(탄수화물)과 산소로 바꾸게 됩니다. 식물에서 녹색을 띠는 거의 모든 부분에는 ‘엽록체’가 들어 있고, 특히 잎에 가장 많습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영양분 덕분에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면 나중에 우리가 얻을 열매가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에 광합성이 얼마나 활발한지 알면 식량생산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에 NASA는 전 지구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을 살피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식물의 잎의 색깔을 살폈습니다. 식물 잎이 녹색이면 엽록체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인공위성에서 본 지구에 녹색이 많으면 광합성이 활발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잎이 말라서 녹색 잎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동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녹색 잎만 살펴서는 광합성을 정확하게 살피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NASA는 식물이 광합성할 때 내놓는 불그스름한 빛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재면 광합성 여부를 곧바로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옥수수 농장에서 광합성한 양이 평소보다 적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시다. 이 정보는 인공위성을 통해 농부에게 전달됩니다. 농부가 광합성이 적게 일어난 지역으로 가서 살피면 문제를 알 수 있겠죠. 물이 부족하다거나 새로운 질병이나 해충이 나타났다는 걸 빨리 알게 되는 것입니다. 덕분에 농장은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광합성이 활발하지 않다면 나중에 우리가 얻을 곡식이 적어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또 광합성이 활발하다면 곡식이 넉넉하게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고요. 이렇게 전 세계 곡식 생산량을 미리 안다면 식량위기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식량으로 사용할 곡식이나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 데 사용할 곡식에 대해서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2008년처럼 갑자기 곡식 가격이 올라서 세계 경제를 뒤흔들 일도 적을 것입니다.

식물은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물질 중에 하나죠. 식물이 광합성을 활발히 한다면 이산화탄소도 줄일 수 있어 지구온난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도 지구 식물의 광합성을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인공위성이 농작물이 광합성하는 정도를 측정하고, 이 정보를 농장에 보내면 병충해나 가뭄 등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사진출처 : NASA)



결국 우주과학자들은 우주나 지구를 관찰하면서 배고픈 지구를 위한 연구도 함께 하는 셈입니다. 인공위성이 식물의 광합성까지 정확하게 보고, 이것으로 한 해의 수확량을 계산하면 갑작스러운 식량위기를 맞을 위험은 줄어들 것입니다. 또 식물의 광합성으로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도 알 수 있어 지구온난화 같은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배고픈 지구를 위한 과학은 생명공학 분야에만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분야 과학자들은 지구가 처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이 주는 정보를 받아 농사짓는 미래 사회가 기대되지 않나요?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1. 모르세 2011.06.29 09:41 신고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시간이 되세요

1973년 경주 황남대총 남분 무덤 발굴 조사가 한창인 어느 날, 고고학자는 금동의 맞새김판 아래에 영롱한 빛을 드러내는 하나의 유물에 매료돼 그 손길을 멈추고 말았다. 이 유물은 신라왕의 부장품인 말안장 가리개로 1,600년 만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영롱한 빛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비단벌레의 날개였다.

비단벌레 날개는 신라시대 왕릉급 무덤인 황남대총, 금관총과 같은 큰 무덤에서 출토된 말안장 가리개, 발걸이, 허리띠꾸미개 등의 유물에서도 발견됐다. 이러한 유물들은 신라시대 최상위의 계층만이 사용한 장식품이다. 왕실은 왜 이토록 비단벌레를 사랑했을까? 그 이유는 황금빛의 금동판과 비단벌레 특유의 색이 화려하게 서로 어울리는 최상의 공예품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단벌레는 왕실의 곤충으로 불렸다.

비단벌레는 딱정벌레목 비단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우리나라에는 해남, 완도 등 남부 해안에서 일부 서식하고 있다. 개체수가 적어 멸종위기 곤충으로 분류되며 역사적,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문화재청에서 2008년에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했다.

비단벌레 날개는 초록빛으로 화려한 광택이 난다. 어떻게 이런 빛깔이 가능한 것일까? 비단벌레 날개의 성분은 키틴(chitin)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키틴은 아미노당으로 이루어진 다당류로 딱정벌레, 새우, 게 등 절지동물의 딱딱한 피부나 껍데기의 골격을 만드는 성분이다.


비단벌레 박제품. 사진 제공 : 국립경주박물관

비단벌레 날개는 15~30개 사슬의 키틴 구조체를 중심축으로 6개의 단백질분자가 나선 공유결합을 형성해 박막을 이루고 있다. 이 박막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유지하면서 층층이 쌓여있는 적층구조를 형성한다. 이와 같이
키틴과 단백질이 이루는 키틴나선 적층 구조가 비단벌레 날개 특유의 탄력과 강인함을 갖게 한다.

비단벌레 표피층에는 구리, 철, 마그네슘 등의 금속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 성분들은 적층구조와 잘 어울려 빛을 받으면 반사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낸다. 대총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날개의 색깔은 녹색의 금속성 광택을 띠며 중간 부분에 붉은색 줄무늬가 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빛이 없고 습도가 높은 무덤 안에서 금속은 산화되고 유기물은 미생물에 의한 분해로 열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나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와 발걸이, 말띠꾸미개는 색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벌레 날개는 표면층의 금속이온이 산소와 만나고 빛에 오랫동안 노출되거나 건조한 상태가 되면 검게 변한다. 때문에 발굴 후 바로 고순도의 글리세린(glycerin) 용액에 넣어 빛을 차단시키고 항온항습(온도 섭씨 10도 이하, 습도 50%) 보관장에 보관, 관리 있다. 글리세린은 공기를 차단하고 비단벌레 표면에 밀착해 보습을 유지시켜 주어 건조함이나 미생물에 의한 분해를 막아준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010년 12월 ‘황남대총-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 특별전을 개최할 때는 까다로운 비단벌레의 보존 특성 상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유물 보호를 위해 36년 만에 처음으로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 있는 상태 그대로 선보였으며 강한 빛을 피하기 위해 조도를 80럭스 이하로 낮추고 단 3일 동안만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80럭스 이하의 조도는 국제박물관협회에서 정한 국제 규격으로, 전시 품목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참고로 일반적인 실내조명은 500~700럭스 정도다.

왼쪽 위는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말안장 가리개와 발걸이의 모습, 왼쪽 아래에는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가리개, 발걸이, 말띠 꾸미개 복원품이다. 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황남대총 비단벌레 날개 장식은 현재까지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문화재다. 지난 특별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된 후 다시 보관장으로 옮겨졌다. 대신 국립경주박물관은 복원품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은 화학약품처리법과 진공동결건조처리방법 등 다양한 처리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화학약품처리법은 폴리에틸렌글리콜 등 보존처리에 많이 사용하는 화학약품을 유물에 침투시켜 보존처리하는 방법이다. 진공동결건조처리방법은 고체에서 기체가 되는 승화원리를 이용해 진공상태에서 유물을 섭씨 영하 40도로 냉동하고 건조시켜 유물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보존방법도 비단벌레 날개를 완벽하게 보호하지는 못한다. 비단벌레 날개의 변색 원인은 복합적이라 아직까지 확실한 보존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한 국립경주박물관 보존과학팀은 정확한 변색 원인을 밝히고 확실한 보존법을 개발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품을 다시 선보이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신용비 국립경주박물관 보존과학팀
  1. 새끼늑대 2011.06.24 11:51

    역사를 지키고 보존하시는데 노고가 많으십니다.

    작년 경주 박물관에서 본 비단벌레+황금 장식품들이 이런 연유로 탄생한 것이군요.

    경주가 또 가고싶네요.

활주로에서 기름을 줄줄 흘리는 비행기가 있습니다. 녀석의 정체는 ‘SR-71(블랙버드)’.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 소문나 있는 비행기입니다. 세계 최고 속도의 비행기가 기름이나 줄줄 흘리다니! 이렇게 된 이유는 블랙버드의 연료통을 이어놓은 부품이 느슨하기 때문입니다. 꽉 조여 놓지 않았으니 기름이 조금씩 새기 마련이죠.

연료통뿐이 아닙니다. 블랙버드를 이루고 있는 여러 조각들은 거의 다 엉성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혹시 하늘을 날다가 연결이 풀리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요. 이런 비행기가 세계 최고 속도로 날다니!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블랙버드가 날아다니는 높이는 26km 이상의 하늘입니다. 이곳의 공기는 영하 53도 정도로 아주 차갑죠. 하지만 소리보다 3배나 빨리 나는 블랙버드는 이런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빨리 날면서 공기와 부딪쳐 오히려 열을 받게 되죠. 그래서 블랙버드의 온도는 300도까지 올라간답니다.

대부분의 물체는 열을 받으면 부피가 커지게 됩니다. 부피는 물체가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를 말하죠. 다시 말해서 온도가 높아지면 물체가 차지하는 공간이 전보다 커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물체를 이루는 알갱이들은 차가운 곳에서는 다닥다닥 붙고, 열을 받으면 조금씩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300도까지 온도가 높아진 블랙버드는 어떨까요? 당연히 블랙버드를 이루는 금속도 부피가 커지게 됩니다. 덕분에 엉성했던 연결고리가 꼼꼼하게 붙게 되면서, 블랙버드의 연료통이 더 이상 기름을 흘리지 않게 됩니다. 블랙버드의 각 이음새에 어느정도의 틈새를 두고 연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블랙버드를 처음부터 단단하게 연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빨리 날아서 뜨거워진 블랙버드의 조각들이 늘어나고, 조각끼리 부딪쳐서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블랙버드를 만든 사람들은 처음부터 열 때문에 부피가 늘어날 경우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블랙버드는 활주로에 있을 때는 기름을 흘리는 조금은 허술한 모습이지만, 하늘을 날 때야 비로서 이음새가 단단해져 제대로 완성되는 비행기인 셈입니다.

이처럼 열을 받아서 부피가 늘어나는 현상을 ‘팽창’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열이 식어서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은 ‘수축’이라고 하죠. 블랙버드에서 볼 수 있는 ‘열팽창(열을 받아 부피가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차가 다니는 길인 철로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찻길을 따라 걷다보면 철로 중간 중간에 틈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것도 ‘열팽창’ 때문에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온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철로를 이루는 금속의 부피가 작습니다. 하지만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철로가 열을 받게 되죠. 이때 금속의 부피가 늘어나서 철로가 조금씩 늘어나게 됩니다. 이때를 대비해 틈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만약 철로 사이에 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름에 햇볕을 받은 금속이 늘어난 부피를 담아둘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기차가 다니는 철로의 모양이 변할 수도 있고, 길이 조금씩 휘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찻길에 문제가 생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요. 철로 중간에 있는 작은 틈들이 이런 사고를 미리 막는 것입니다.

강에 놓인 다리도 중간중간에 이음매를 만들고 이 부분을 조금 띄어놓습니다. 이음매는 두 물체를 이은 자리를 뜻하는데요. 한번에 죽 연결되게 만들 수 있는 다리를 굳이 나눠서 만들고 붙이는 이유도 바로 ‘열팽창’때문입니다. 다리를 이루는 콘트리트도 열을 받으면 부피가 늘어나는데요. 여름에는 띄어놓은 이음매에는 부피가 늘어난 콘크리트가 들어가게 됩니다. 덕분에 다리가 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깃줄도 계절에 따라 길이가 달라집니다. 겨울에는 전봇대 사이에 있는 전깃줄이 팽팽하게 걸려 있지만, 여름이 되면 축 늘어진 전깃줄을 볼 수 있습니다. 철로나 콘크리트처럼 전깃줄도 열을 받아서 부피가 늘어난 것입니다.

집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그릇에서도 열팽창 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종 똑같은 크기의 그릇 두 개가 포개져서 빠지지 않는 경우가 있죠? 이때 그릇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이 위에 찬물을 부어봅시다. 그러면 그릇 두 개가 쉽게 분리됩니다. 아래쪽에 있는 그릇은 뜨거운 물 때문에 열을 받아서 ‘팽창’하고, 위쪽에 있는 그릇은 찬물 때문에 열을 잃어서 ‘수축’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열 받은 물체’는 부피가 커집니다.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낸 덕분에 블랙버드 같은 멋진 비행기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기초가 탄탄했기 때문에 뜨거운 상태에서 가장 완벽한 모양이 되는 블랙버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가 많습니다. 이들이 앞으로도 멋지게 활동하길, 그래서 블랙버드 같은 걸작품이 하나 더 나오길 바랍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1. 모르세 2011.06.21 23:40 신고

    잘보고 갑니다.



“악, 사람 살려!! 이 언니가 날 죽이려고 해요!!”
주사실에서 들려오는 태연의 절규에 병원 전체가 풀썩풀썩 요동을 친다. 겨우 해열 주사 한 대 맞으면서 간호사에게 살인치사 혐의까지 들이대는 태연이다.

“태연아, 조금만 참자. 앞으로 1~2년쯤 후면 주사를 놓는데 1/10초 밖에 걸리지 않아서 주사를 놓는지 안 놓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이 없는 무통주사가 개발될 예정이니까 말이야.”

“지, 진짜요? 와~~ 끝내준다. (잠시 생각) 뭐야!! 결론은 지금 없다는 얘기잖아. 그런즉슨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음보다 끔찍한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거고. 난 용납할 수 없어요. 약을 달라고, 약을!”

“내가 살다 살다 열이 40도가 넘는데도 너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애는 처음 본다. 그러지 말고 태연아, 주사 딱 한 번만 맞자. 엉? 1분이라도 빨리 열을 내리지 않으면 쇼크가 올지도 모른단 말이야. 약을 먹으면 소화기관과 간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약 성분이 혈관에 도착하기 때문에 빠른 효과를 보기 어렵지만, 주사는 혈관에 직접 주사되는 거라서 열을 금방 떨어뜨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태연, 아빠의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발을 동동 구르며 억지를 쓴다. 두 명의 간호사가 달려들어도 헐크처럼 밀쳐낼 뿐이다.
“어쨌거나 주사는 안 돼!! 주사 고통으로 인한 쇼크로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욧!”

“물론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이 주사만 있는 건 아냐. 약물을 목표 부위에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반대로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기술을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이라고 해. 이러한 기술에는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단다. 가장 쉬운 게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거고 붙이는 파스, 좌약, 흡입하는 약 등도 있지. 특히 에어로졸(액체나 미세한 가루 약품을 가스의 압력으로 뿜어내 사용하는 약품)을 흡입하면 침투성이 매우 뛰어난 뺨 안쪽 조직을 통해 직접 약물이 흡수되기 때문에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어.”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에어로졸을 안 뿌리고 주사를 놓냐고요!”

“지금 당장은 없으니까 그러지!”

갑자기 태연은 바람난 고무풍선처럼 기운이 쑥 빠져버린다. 급기야 점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간호사들이 주사를 놓는다. 태연도 별 저항 없이 주사를 맞고는 잠에 빠져든다.

“휴…, 간호사 생활 5일 만에 가장 힘이 센 환자였어요. 그나저나 태연 아버지는 참으로 박학다식하시네요. 멋지세요. 호호호. 전 똑똑한 남자를 좋아하거든요.”

아빠는 신참 간호사의 노골적인 호감표현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아빠의 지식자랑놀이에 불이 붙는다.

“뭐, 무식한 편은 아니죠. 하하하! 아까 어디까지 들으셨더라? 약물전달시스템에 대해 얘기했었죠 아마? 요즘엔 최첨단 시스템도 여럿 개발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자성 나노캡슐’ 같은 겁니다. 이게 뭣이냐 하면 암 덩어리 주변에 자기장을 걸고 항암제를 자성을 지닌 나노캡슐에 넣은 다음 인체에 주입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장 때문에 캡슐이 암세포 주변에 모이겠죠? 이때 항암제를 집중적으로 쏘아대도록 하는 방법이에요. 간호사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항암제는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까지 죽여서 부작용이 컸잖아요. 이 기술을 이용하면 그런 문제를 크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어머 어머, 정말 똑똑하시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쿠할할할! 가장 최근의 약물전달시스템들을 보면 이런 것도 있어요. 약물이 들어간 나노캡슐에다 전기 자극에 따라 기공이 열리고 닫히는 ‘스마트 고분자’인 폴리피롤을 붙이는 거예요. 그 다음 인체에 주입시키면 원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줘서 캡슐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거든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정확히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시간동안만 약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 거죠. 몸 밖에서 리모콘으로 나노캡슐을 조절할 수도 있어서 아주 편리하답니다.”

“와, 대단하다. 그리고 또요?”

“레이저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뇌혈관은 혈뇌장벽이라는 특수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장벽은 대사와 관련된 물질은 통과시키고 그 밖의 물질은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때문에 뇌로 약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큰 장애물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레이저빔을 1,000분의 1초 동안 뇌혈관 벽에 쏘아서 장벽의 차단기능을 일시적으로 막고 그 틈에 약물을 쏙 집어넣는 기술을 개발했답니다.”

딱, 여기까지였다. 간호사의 향학열이 즐거울 수 있었던 건…. 그러나 이후로도 아빠의 지식자랑놀이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갓 졸업한 신참 간호사의 얼굴은 잘 띄운 메주처럼 변해갔다. 잠든 줄 알았던 태연이 어느샌가 일어나 간호사의 참담한 얼굴빛을 즐기고 있다.

“흥, 언니. 내 엉덩이에 무지막지한 주사바늘을 꽂더니만 아주 깨소금 맛이에요.”

“태, 태연아. 정말 미안하구나. 나의 잘못된 칭찬 한 마디가 이토록 참담한 결과를 낳을 줄은 내 미처 몰랐단다. 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이니?”

“딱 하나 있어요. 아빠한테도 주사바늘을 꽂으세요. 주사를 죽음과 동격으로 여기는 공포증은 아빠로부터 유전된 거니까요.”

태연의 대답 직후 간호사는 빛의 속도로 태연 아버지의 팔뚝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양제 주사바늘을 꽂는다. 그리고 들려온 아빠의 절규.

“악!!!”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우리나라처럼 음악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거리나 지하철에는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노래방이 새로운 여가문화 장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인체의 오감(五感) 가운데, 소리에서 비롯되는 음악이나 노래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다채롭게 분화된 문화는 없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실 소리는 인체의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인기가수는 확실하고 뚜렷한 경제적 수익을 올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기가수의 노래는 소리의 측면에서 보통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언젠가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트로트 가수 이미자 씨의 목소리를 분석한 적이 있다.

이미자 씨는 얼굴에 비해 입이 큰 편이다. 속설에 따르면 입이 큰 사람이 노래를 잘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대체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입이 크다는 것은 입 안의 공간이 넓다는 것으로, 이는 소리가 커다란 울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입이 크다고 해서 모두 다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목소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성대와 발성능력이다.

음성분석기에 나타난 그녀의 목소리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리 톤이 명료하고 배음의 울림이 악기음 같았다. 배음이란 진동체가 내는 여러 가지 소리 중 원래 소리보다 많은 진동수를 가진 소리를 말한다. 흔히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또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3옥타브(8배 음폭) 동안 안정적이었다.

특히 이미자 씨의 목소리에는 저음에서 중음을 거쳐 고음 영역에 이르기까지 바이브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구구절절 애절한 느낌이 더해졌다. 결과적으로 이미자 씨는 천부적으로 매끄럽고 정교한 성대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빼어난 악기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유의 3단 고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어떨까. 아이유는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가창력과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새로운 국민여동생으로 급부상했다. 그녀의 특기는 팬들 사이에서 ‘3단 고음’으로 불리는 고음처리다. 그녀의 3단 고음을 바로 분석해 발표하고 싶었으나 급상승한 인기를 피해서 수개월 후에 그 분석결과를 학술논문지에 발표했다.(견두헌, 배명진 “아이유의 고음 발성 특성 분석”, 한국음향학회, 2011년 춘계학술대회 학술발표논문지 5월 12일)

아이유는 길고 미끈한 목과 큰 입속에서 울리는 고음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소리의 근원은 바로 폐활량에 있다. 소리는 폐에 공기를 모으면서 시작하고 성대의 떨림을 통해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기본음을 만들게 된다. 기본음의 음 높이는 성대가 1초에 몇 번 열리면서 공기가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고음 톤일수록 빠져나가는 공기가 많아져서 긴 시간동안 소리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아이유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고음 톤이면서도 소리의 지속시간이 길다. 폐활량이 아주 큰 편인 것이다.

가창력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고음발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하느냐에 달렸다. 보통 일반인들도 가성을 통해 특정고음을 낼 수 있지만 길게 지속하거나 안정된 음정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유의 고음발성은 한번에 3단계 변음을 하면서도 음높이의 안정도가 95%이상이다. 게다가 그 상태로 8초 이상을 지속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발성음정의 안정도가 기계적인 정확도에 근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유는 3단 고음을 낸 다음에 바로 정상적인 목소리 톤으로 돌아온다. 즉 평소에 노래 음정이 300헤르츠(Hz) 대에 머무르는데 500~700Hz 대역의 메조소프라노 3단 음정을 길게 지속하다가 금방 자신의 목소리 톤으로 복귀한다. 이 사실은 그 노래의 음정을 잡는 청감특성이 아주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아이유 3단 고음의 발성특성을 학술논문에 발표하자 그 파급성은 대단했다. 주요 인터넷 뉴스에 메인뉴스로 다루어졌고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로 탑10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자 KBS ‘스펀지 ZERO’에 재미있는 제보가 올라왔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저속으로 재생하면 (현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현빈과 아이유가 서로 비슷한 음정을 가졌다는 것은 두 사람의 발성기관이 유사하다는 의미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현빈은 입대하기 전 인기절정의 드라마 주인공으로 연기하면서 그 주제가도 부를 만큼 노래실력도 뛰어나다. 실험 결과 아이유의 목소리를 저음화하면 현빈의 목소리로 들린다는 놀라운 일이 사실로 확인됐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저속화하면서 현빈의 노래와 스펙트럼 비교를 통해 유사도를 측정했다. 78%로 속도를 늦췄을 때 두 노래의 스펙트럼은 92% 정도로 유사했다. 일반적으로 두 노래의 스펙트럼 유사도가 90%를 넘으면 동일한 가수가 부른 노래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두 노래가 서로 비슷한 음정을 가졌다는 것은 두 사람의 발성기관이 유사하다는 의미다. 현빈과 아이유의 명함판 사진을 같은 크기로 좌우 배열해 목 길이와 입, 코의 길이 등을 비교해봤다. 그러자 눈 이하의 얼굴 형태와 발성기관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내친김에 노래 발성기관인 목의 길이를 비교해 봤다. 한국 사람들의 목구멍 길이는 신장에 비례해 나타낼 수 있다. 남자는 신장의 10%가 목구멍 발성의 길이를 나타내고 여자는 자신의 키에 9%가 된다. 공식적으로 현빈의 키는 184cm이고 아이유는 162cm이므로 목구멍 길이 비율을 측정해보면 두 사람의 음관비율은 79%가 된다. 따라서 그 비율만큼 저음화하면 아이유의 발성이 현빈의 목소리로 바뀐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발성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
 
“너는… 입, 입양됐다.”

이 말을 들은 쿵푸팬더 ‘포’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입양이라니! 충격을 감출 수 없는 포의 얼굴.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빵’ 터졌다. 당연한 사실을 믿고 있는 포와 거위 아빠의 오버액션 덕분이다. 하지만 입양 사실에 놀란 포는 상심에 빠졌다. 그리고 친부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말 개봉한 ‘쿵푸팬더2’는 쿵푸를 지키고,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포의 이야기를 그렸다. 거위를 친아빠로 알았던 포. 그가 만약 유전자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DNA는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된 이 물질에는 각 생물의 설계도가 담겨있다. 이것만 있으면 생물의 겉모습이나 전체가 없어도 원래 주인이 어떤 생물인지 알 수 있는 셈이다. 동물의 털이나 살점처럼 아주 작은 부분만 있어도 DNA를 추출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만든 ‘DNA 바코드’가 유전자 신분증이다.

쿵푸팬더 포와 같은 자이언트판다의 경우 이미 중국에서 만든 유전자 신분증이 있다. 저쟝대학 생명과학원에서 완성한 이 유전자 신분증에는 가족번호와 가족명칭, 성별, 나이, 유전자신분증 번호, 부모이름 등 비교적 자세한 정보가 기록돼 있다. 1996년과 1997년 자이언트판다의 배설물에서 DNA조직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 개발한 결과다. 만약 포가 자신의 털 하나를 뽑아들고 연구소를 찾았다면 자신의 정체와 부모까지 상세히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DNA 바코드 분석 과정.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다른 생물도 판다처럼 자신의 고유한 DNA 바코드를 가질 수 있다. 세계 과학자들은 이미 2005년부터 생물종의 DNA 바코드를 만드는 ‘DNA 생물 바코드 프로젝트(Barcode of Life)’를 시작했다. 포처럼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가지는 생물에게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종마다 다른 DNA 염기서열을 가진다. 이 차이를 구분하고 분류하면 겉모습이나 세포 조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여러 생물 종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희귀생물을 보존하고, 품종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수 있다. 생물자원의 관리와 유통에 혁신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생물 바코드 컨소시엄(CBOL)’은 세계 45개국 150여개 연구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학교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등 5곳이 참여하고 있다.

구렁이(Elaphe schrenckii, 왼쪽)와 DNA 바코드 증폭 확인을 위한 전기영동사진(오른쪽).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의 일부분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하면 나오는 고유한 코드가 나온다. 이를 사진과 설명, 과학적 정보와 연결시키는 게 DNA 바코드의 핵심이다. 이를 이용하면 범죄수사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립생물자원관은 DNA 바코드를 사건해결에 사용했다. 2011년 3월에는 멸종위기의 구렁이(Elaphe schrenckii)를 몰래 수입하려던 밀수업자가 붙잡혔다. 밀수업자는 구렁이 수백만 마리를 다른 뱀과 섞어 수입하려다 경찰에 잡혔고, 구렁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의 DNA 바코드 분석결과 구렁이로 최종 확인돼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2010년에는 국내로 몰래 들어온 호랑이 가죽이 가짜임이 밝혀졌다. 가죽의 일부를 이용해 DNA 바코드를 분석하자 호랑이가 아니라 개(Canis lupus familiaris)라는 결과가 나왔다. 밀수범은 가짜 호랑이 가죽을 들여 비싼 값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에는 꿀벌 농가에 피해를 준 짐승을 알아내기도 했다. 현장에 남겨진 몇 가닥의 털에서 DNA를 추출, 분석한 결과 농장을 습격한 동물이 반달가슴곰(Ursus thibetanus thibetanus)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보조작이 불가능한 DNA 바코드를 이용하면 멸종위기의 생물이 유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생물의 종을 보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또 DNA 바코드로 어떤 생물이 어디에 사는지 파악하게 되면 생태계 모니터링도 할 수 있다. 이는 더 다양한 생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짜 호랑이 가죽(a)과 DNA 바코드 분석에 쓰인 분석용 시료(b)(c)(d)(e)의 모습.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마침 국립생물자원관은 2011년 4월 말부터 야생생물의 DNA 바코드 확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2011년 주요 생물자원 200종에 대한 DNA를 확보하고 2015년까지 5,000여종의 우리나라 자생식물에 대한 DNA 바코드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생태계 연구와 생물의 산업적 활용에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

‘쿵푸팬더2’에서처럼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생물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생물 대부분이 이름도 모른 채 살다가 멸종되는 건 슬픈 일이다. DNA 바코드가 지구상에 살고 있는 5,000만종 이상의 생물에게 정체성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170만종, 이름조차 모르는 4,830만종 이상의 생물이 ‘이 땅에서 멋지게 살았노라’는 증명이 되도록 말이다.

결국 유전자 신분증(DNA 바코드)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생물다양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1. †마법루시퍼† 2011.06.09 21:58 신고

    잼있게 봤습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