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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Stories/푸른하늘

블랙버드는 뜨거운 것이 좋아

by 사랑해,태진 2011. 6. 21.

활주로에서 기름을 줄줄 흘리는 비행기가 있습니다. 녀석의 정체는 ‘SR-71(블랙버드)’.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 소문나 있는 비행기입니다. 세계 최고 속도의 비행기가 기름이나 줄줄 흘리다니! 이렇게 된 이유는 블랙버드의 연료통을 이어놓은 부품이 느슨하기 때문입니다. 꽉 조여 놓지 않았으니 기름이 조금씩 새기 마련이죠. 연료통뿐이 아닙니다. 블랙버드를 이루고 있는 여러 조각들은 거의 다 엉성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혹시 하늘을 날다가 연결이 풀리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요. 이런 비행기가 세계 최고 속도로 날다니!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블랙버드가 날아다니는 높이는 26km 이상의 하늘입니다. 이곳의 공기는 영하 53도 정도로 아주 차갑죠. 하지만 소리보다 3배나 빨리 나는 블랙버드는 이런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빨리 날면서 공기와 부딪쳐 오히려 열을 받게 되죠. 그래서 블랙버드의 온도는 300도까지 올라간답니다.

대부분의 물체는 열을 받으면 부피가 커지게 됩니다. 부피는 물체가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를 말하죠. 다시 말해서 온도가 높아지면 물체가 차지하는 공간이 전보다 커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물체를 이루는 알갱이들은 차가운 곳에서는 다닥다닥 붙고, 열을 받으면 조금씩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300도까지 온도가 높아진 블랙버드는 어떨까요? 당연히 블랙버드를 이루는 금속도 부피가 커지게 됩니다. 덕분에 엉성했던 연결고리가 꼼꼼하게 붙게 되면서, 블랙버드의 연료통이 더 이상 기름을 흘리지 않게 됩니다. 블랙버드의 각 이음새에 어느정도의 틈새를 두고 연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블랙버드를 처음부터 단단하게 연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빨리 날아서 뜨거워진 블랙버드의 조각들이 늘어나고, 조각끼리 부딪쳐서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블랙버드를 만든 사람들은 처음부터 열 때문에 부피가 늘어날 경우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블랙버드는 활주로에 있을 때는 기름을 흘리는 조금은 허술한 모습이지만, 하늘을 날 때야 비로서 이음새가 단단해져 제대로 완성되는 비행기인 셈입니다.

이처럼 열을 받아서 부피가 늘어나는 현상을 ‘팽창’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열이 식어서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은 ‘수축’이라고 하죠. 블랙버드에서 볼 수 있는 ‘열팽창(열을 받아 부피가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차가 다니는 길인 철로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찻길을 따라 걷다보면 철로 중간 중간에 틈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것도 ‘열팽창’ 때문에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온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철로를 이루는 금속의 부피가 작습니다. 하지만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철로가 열을 받게 되죠. 이때 금속의 부피가 늘어나서 철로가 조금씩 늘어나게 됩니다. 이때를 대비해 틈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만약 철로 사이에 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름에 햇볕을 받은 금속이 늘어난 부피를 담아둘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기차가 다니는 철로의 모양이 변할 수도 있고, 길이 조금씩 휘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찻길에 문제가 생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요. 철로 중간에 있는 작은 틈들이 이런 사고를 미리 막는 것입니다.

강에 놓인 다리도 중간중간에 이음매를 만들고 이 부분을 조금 띄어놓습니다. 이음매는 두 물체를 이은 자리를 뜻하는데요. 한번에 죽 연결되게 만들 수 있는 다리를 굳이 나눠서 만들고 붙이는 이유도 바로 ‘열팽창’때문입니다. 다리를 이루는 콘트리트도 열을 받으면 부피가 늘어나는데요. 여름에는 띄어놓은 이음매에는 부피가 늘어난 콘크리트가 들어가게 됩니다. 덕분에 다리가 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깃줄도 계절에 따라 길이가 달라집니다. 겨울에는 전봇대 사이에 있는 전깃줄이 팽팽하게 걸려 있지만, 여름이 되면 축 늘어진 전깃줄을 볼 수 있습니다. 철로나 콘크리트처럼 전깃줄도 열을 받아서 부피가 늘어난 것입니다.

집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그릇에서도 열팽창 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종 똑같은 크기의 그릇 두 개가 포개져서 빠지지 않는 경우가 있죠? 이때 그릇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이 위에 찬물을 부어봅시다. 그러면 그릇 두 개가 쉽게 분리됩니다. 아래쪽에 있는 그릇은 뜨거운 물 때문에 열을 받아서 ‘팽창’하고, 위쪽에 있는 그릇은 찬물 때문에 열을 잃어서 ‘수축’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열 받은 물체’는 부피가 커집니다.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낸 덕분에 블랙버드 같은 멋진 비행기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기초가 탄탄했기 때문에 뜨거운 상태에서 가장 완벽한 모양이 되는 블랙버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가 많습니다. 이들이 앞으로도 멋지게 활동하길, 그래서 블랙버드 같은 걸작품이 하나 더 나오길 바랍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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