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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Stories/푸른하늘

산소야~ ‘모나리자’를 부탁해!

by 사랑해,태진 2011. 5. 23.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입니까! 루브르박물관에 불이라니요!”

 

루브르박물관에 불이 난 건 지난 수요일이었다. 새벽 5시 정도에 ‘퍽’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고, 경비원들이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다. 재빨리 출동한 소방대원 덕분에 불길은 20분 만에 잡혔다. 경찰은 전기누전 때문에 불이 난 것이라고 했다. 콘센트 하나에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아놓은 게 문제였다.

박물관장인 아네모네가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행이 불이 빨리 꺼졌고, 1층을 뺀 다른 곳에 있는 미술품은 무사했다. 하지만 불에 그을린 그림 중에는 ‘모나리자’도 포함돼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나리자’에 그을음이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관장님, 이렇게 투덜거리기만 하실 거예요? 어서 미술품 원래대로 만들어야죠~.”

기획실장 마리아다. 그녀라면 혹시 좋은 방법을 찾았을지 모른다. 아네모네 관장은 마리아와 함께 대책을 찾기로 한다.

“오~ 마리아. 나도 답답해서 그런다네. ‘모나리자’의 그을음을 닦아내다가 망가져버릴지도 모르지 않나? 벤젠이나 알코올로 그을음을 닦아낼 수 있지만, 그림이 워낙 오래된 거라 물감까지 부서져 나올 것 같단 말이야.”
“걱정 마세요. 그러실 줄 알고 제가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모셨어요. 그 분이 오시면 물감 하나 다치지 않고 ‘모나리자’가 원래 모습을 되찾을 거예요.”

NASA라면 로켓이나 우주선 연구하는 곳이다. 거기서 ‘모나리자’를 복원하러 온다니…. 관장은 마리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장난하냐’고 소리를 지르려는 참에 NASA에서 랭턴 박사가 도착했다. 손에 아주 작은 총 모양의 장치를 들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NASA에서 전기물리학을 연구하는 랭턴이라고 합니다. 여기 복원해야 할 미술품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저희가 부탁드릴 작품은 ‘모나리자’예요. 며칠 전에 화재사고가 있었거든요. 깨끗하게 살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산소 원자를 한번 믿어보세요.”

 

NASA에서 그림을 청소하는 데 사용하는 산소 원자빔의 모습. (사진출처:NASA)

 

랭턴은 시커멓게 그을음이 앉은 ‘모나리자’ 앞에 섰다. 그리고 손에 들려있던 총 모양의 장치를 이용해 ‘모나리자’에 산소를 뿌렸다. 지름 3mm인 총에서 산소 원자가 뿜어져 나오자 ‘모나리자’의 그을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모나리자’의 유명한 미소도 되살아났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깨끗하게 원래 모습을 찾았군요!”

복원된 ‘모나리자’를 보고 아네모네 관장이 소리를 질렀다. 마리아 실장도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복원된 ‘모나리자’를 잘 챙겨두고, 랭턴 박사를 다른 자리로 모셨다.

“마치 기적을 본 것 같군요. 시커멓던 미술품이 산소 총을 맞고 제 모습을 찾다니!”
“맞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요?”
“하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원리는 간단해요. 그을음은 보통 ‘탄화수소’로 이뤄져 있는데요. 탄화수소란 말 그대로 탄소(C)와 수소(H)로 이뤄진 물질이죠. 여기에 산소를 쏘게 되면 탄소와 수소가 각각 산소와 만나게 됩니다. 탄소와 산소가 반응하면 이산화 탄소(CO₂)나 일산화탄소(CO)가 되고요. 수소와 산소가 반응하면 수증기(H₂O)가 되죠. 결국 우리 눈에 보이던 그을음(탄화수소)은 산소를 만나면 다른 기체가 돼서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산소는 반응성이 매우 좋은 원자다. 덕분에 탄소나 수소처럼 다른 원자를 만나면 금방 반응해 다른 물질이 된다. 하지만 그림에 있는 물감 성분은 이미 충분히 많은 산소 원자와 결합돼 있어 산소 원자를 만나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림과 그을음은 다른 층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을린 그림에 산소 원자를 쏘면 원래 그림은 남고, 그을음만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NASA에서 이런 연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미술품 복원은 아무래도 우주기술과 거리가 멀어 보여요.”
“아, 거기에 또 재미있는 사연이 있죠. 우리 주변에 산소는 보통 분자 상태(O₂)로 존재해서 안정적인데요, 고도가 높아지면 태양의 자외선이 산소 분자를 쪼개버려요. 우주 공간엔 산소 원자가 생기게 되는 거죠. 이런 산소 원자들은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의 표면에 부딪칠 수 있답니다. 결과적으로 반응성이 워낙 좋은 산소가 우주선 등을 손상시키는 거죠. 그래서 NASA에서는 산소 원자의 반응성을 연구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어요.”

이 연구를 하던 곳은 NASA 글렌연구센터의 ‘전기물리학 연구실’이었다. 랭턴 박사는 자신의 선배인 브루스 뱅크스와 샤론 밀러가 산소의 반응성을 거꾸로 생각하면서 미술품 복원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이들이 우주선 표면을 분해시킬 정도로 강한 산소의 반응성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클리블랜드 박물관 화재사고로 그을렸던 그림이 복원된 모습(사진출처 : NASA)


“뱅크스와 밀러 박사는 이론적으로 결과를 따져보고 실험을 시작했어요. 그림을 일부러 그을린 뒤 커다란 용기 속에 넣고 산소 원자를 넣어본 거죠. 그러자 그을음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마침내 깨끗해졌답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연구팀은 NASA 근처 크리블랜드 미술관 지하 창고에 있던 미술품 2점을 깨끗이 복원했죠.”

이후 NASA의 ‘산소 원자 복원기술’은 앤디 워홀의 작품인 ‘욕조’와 ‘라이자 미넬리’를 살려냈다. ‘욕조’에 묻은 선명한 립스틱 자국을 산소 원자를 쏴서 지우고, ‘라이자 미넬리’의 마커 자국도 산소 원자총으로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1958년과 1961년 두 번의 화재로 온통 그을음으로 덮여 있던 모네의 ‘수련’도 NASA의 산소 원자총 덕분에 제 모습을 찾았다. 검댕 대신 아름다운 푸른색과 초록색을 되찾은 것이다.

“우주기술 덕분에 우리 ‘모나리자’가 살았네요.”
“앞으로도 연구 많이 하셔야겠어요. 우주기술이 앞으로 어디에 또 사용될지 모르니까요.”
“네, 그러겠습니다. 앞으로도 항공우주과학에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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