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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도서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장편소설

by 사랑해,태진 2019. 10. 20.

P. 68 

 

"아니야, 우주는 무한할 거야. 이 우주에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뿐이라면, 생각만 해도 추워. 무주에서 보내던 그해 겨울이 기억나.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 그때 달달달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은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이었어. 그게 누구든, 나는 연결되고 싶었어. 우주가 무한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뭐래도 상관없어. 다만 내게 말을 걸고, 또 내가 누구인지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우주가 무한해야만 가능 한 일이라면 나는 무한한 우주에서 살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너무 추울 것 같아."

 

"If all else fail, myself have power to die."

모든 게 끝장나도 내겐 아직 죽을 힘이 남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3막 5장.

 

 
P.283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 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199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했던 주인공 남자. 그를 중심으로 일제시대와 해방기, 1980년대 말을 오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좌익운동을 했다는 그의 할아버지, 1990년대 운동권 학생인 그와 여자친구 정민, 1980년대 말의 맑은 청년이었던 정민의 삼촌, 학생회 활동 덕에 독일까지 건너가서 만나게 된 강인수, 레이, 정교수, 바르트(? 모르겠다, 외국이름에 약하므로 통과;) 등

 

무척 많은 등장인물이 꼬리를 물고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이다. 제목을 보고 존재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려니 했는데, 광범위한 역사의 스펙트럼을 보고 깜짝 놀라버렸다. 근현대사에 대해 보다 풍부한 지식이 있었더라면 더 재밌게 읽었을 수도 있었으나 나의 빈약한 두뇌는 이틀만에 책을 다 읽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ㅋ

 

어떤 시대와 어느 공간에 살 건,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모르건 내 존재와 관계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 이야기 방식과 기막히게 꼬리 물리는 구성이 좋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죽을 힘이 남았다면 열심히나 살아 봐! 혼자서 일탈해독하고는 집으로 내려왔다. 뭐든 또 시작해서 내가 살아있고 좀 외롭다고 이야기해줘야지, 그에게든 그녀에게든.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표지

 

2009년 2월 9일 싸이월드 등록

2019년 10월 20일 티스토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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