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eam Factory/도서관

축소된 대한민국, '빈스토크': 배명훈, <타워>

by 사랑해,태진 2019. 10. 16.

빈스토크(Beanstalk). <재크와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로 솟은 거대 콩나무 줄기의 이름다. 그리고 <타워>에서는 2408m, 674층, 50만명이 밀집해 사는 초대형 복합빌딩이자 일종의 국가다. 작가는 상상의 건물에 세상을 구축한 뒤 세상살이의 은밀한 촌극과 서글픈 모순, 그리고 희망을 그린다. 작가가 의도한 바 없다지만 <타워>는 한국 SF계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히며 인기를 얻는 중이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여러차례 비틀어진 대한민국을 그리는 소설, 그것이 바로 <타워>다.

 

책 속 6개의 작품은 모두 타워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담겨있다. 별도의 이야기이면서 또 연결되는 '연작소설'의 형태인 셈. 혹시 674층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다 담다보면 작가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지도 모른다. (큭큭)

 
빈스토크는 일반적인 빌딩처럼 나란한 층과 공간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수평과 수직이 뒤틀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는 복잡하다. 마치 서울시 지하철 노선도처럼, 아니 그보다 더 복잡하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들이 좀 어지러운 것도 사실. 분명 권력구조와 비리와 자본, 계급과 계층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어렴풋이 피식피식 웃음만 날 뿐. 그래서 하나씩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야밤에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배명훈 작가의 <타워> 표지

 
1. 동원 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

: 27층, 빈스토크 미세권력연구소. 정 박사는 빈스토크의 권력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고급 양주에 전자태그를 부착하고 그 술의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어떤 술을 화폐로 통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대가를 돌려받을 것이 확실치 않은데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줘야 할 때가 있다. 뇌물, 상납, 청탁, 촌지와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해 주어야 할지가 분명하고 주는 사람이 무엇을 제공해야 할지도 비교적 확실하다. 하지만 그런 투박한 경우가 아니라 '감사의 선물', 혹은 '작은 정성'처럼 훨씬 더 섬세하고 민감한 방식의 지불-용역 교환 관계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선불해야 할지, 또 선물을 받은 대가로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가 교환 관계의 액면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느다. 그래야 나중에 걸렸을 때 발뺌할 수가 있기 때문인데, 비상시가 아니면 권력은 보통 그렇게 움직인다." p.7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고급 양주. 그런데 이 양주가 흘러흘러 멈춘 곳이 487층 영화배우 '개'가 사는 곳이다. 연구에 참여했던 이 박사는 정 박사와 뜻이 맞지 않아 나가고 세 명의 박사가 투입된다. 송, 박, 황박사. 각자 전공과도 상관없는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정 박사의 권력 때문. 교수 자리라도 하나 얻을까 하는 심산이었다.

 

IT를 전공한 송 박사가 487층의 개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권력장'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짠다. 개아 없는 경우 권력의 중심에는 정 박사가 있었다. 놀라운 결과를 얻은 세 박사는 정 박사 후처의 출산지에서 그녀의 죽음을 목격한다. 권력장은 소리소문없이 시장의 권력까지 틀어쥐려던 정 박사의 부인을 위협하다 급기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다.

 

권력의 핵심을 알아내려는 정 박사의 시도 자체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진짜 권력은 숨어 있다. 누구라도 기득권에 위해를 가할만하면 소리없이 위협하고 죽이기까지 할지도 모른는 일이다. (끙;)

 
2. 자연예찬

저소공포증이 있는 작가 K는 '털면 먼지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보다 심하지은 않았지만 평생동안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들로 심판대에 오르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비판을 관두고 자연을 예찬하기 시작한다. 50층 이하로 내려가면 공포에 시달리고 30층 이하에서는 정신을 잃는 그가 자연을 예찬하는 것. 권력자들이 무섭기 때문에.

 
"비판을 해야 할 사람들이 비판을 그만두자 비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비판을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대가 나서서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다른 규칙이 강화되었다. 321층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다음 날, 광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층간소음법 위반으로 경비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수직운송 업체와 정부의 관계를 조렁하는 연설을 한 작가 몇 사람은 음란성 시비에 걸려 지면이 끊겼다. 시 정부에서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딱 그 정도의 일을 할 권한이 있는 누군가가, 누가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한 일이었다." - p.44-45

 

빈스토크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대지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축복하는 K. 그는 프리힐리아나에 있는 별장으로 간다. 그곳에는 바깥을 중계해주는 로봇과 로봇을 관리하는 로사가 있다. K는 D의 구구한 부탁에도 '자연예찬'의 글을 멈추지 않는다. 로사는 착하고 성실하며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아이'였다. 성실히 로봇을 정비했으며, 학비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K는 로사가 별장에 드나듦으로써 먼지가 하나 더 생길 것을 우려하지만 로사로 가는 장학금을 막지 않았다.

 
K가 쓴 글은 대지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글을 계속 쓴다. 청탁을 맡은 D는 왜 기존의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 과정에서 큰 청탁 건이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알게 된다. 태초의 신인 나무가 등장하는 소설과 소설가의 청탁. 자연을 예찬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먼지나는 삶을 사는 모습, 조금은 슬프고 오싹하다.

 

 

3. 타클라마칸 배달사고(참고로 이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599층 이엔케이 위성디자인 회사. 은수는 빈스토크 최고 위성디자인 회사인 이엔케이에 들어가면서 첫사랑 민소와 이별한다. 그 회사는 마치 한국의 삼성처럼 빈스토크를 주름잡고, 커피스타일까지 주도하는 곳이었다. '바보'같은 민소는 은수가 이엔케이로 들어가는 것이 싫다며 작은 다툼을 했고, 둘을 헤어지게 된다. 민소가 다시 만나자는 편지를 썼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배달사고.

 
배달사고의 주범은 병수. 빈스토크에는 무료 우편시스템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우편물들을 가지고 자신이 가는 층에 옮겨 놓는 방식이었다. 병수가 민소의 편지를 깜빡하고 4개월이나 가지고 있었던 것. 민소는 은수의 답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빈스토크에 들어가기 위해 파병지원한다. 그리고 타클라마칸에서 실종. 그 사실은 병수가 은수를 찾아감으로써 알려진다.

 
은수와 병수는 인터넷 프로그램을 개발, 위성으로 타클라마칸을 보고 민소를 찾아낸다. 그 와중에 네티즌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고, 그것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거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수십만명의 네티즌이 함께 검토한 것. (이 장면이 정말 뭉클했다.)

 

 

4.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520층 고시원. 주인공은 부모님이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다 날리고 520층에 달라 고시원방 하나 남은 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통과로 취직. '수직주의자'처럼 보이게 된다. 고시원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해줬던 '수평주의자' 옆집 주인의 얼굴도 모른채 호감을 가지다가 직접 만나게 되고, 플라토닉 러브를 진행한다. 그런데 단순히 운송시스템에서 비롯된 수평주의와 수직주의가 분리, 단절되면서 둘도 멀어지게 된다.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은 외부 침입에 있어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조작해야 무사히 권력자를 구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연습이었다. 결과가 좋을 수록 많은 사람들이 해고됐고, 그래서 주인공은 설렁설렁 일하게 된다. 생소한 용어와 개념이 난무하지만 한국사회의 계급간 계층간 대립이 담겨 있어 낯설지 않았다. 정확히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단하군, 싶은 상상력이었다.

 
- 엘리베이터 : 빈스토크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서 30층 이내 구간을 오가는 중거리 엘리베이터, 그리고 장거리 엘리베이터로 구분된. 대부분 민간사업자들이 운영하면 운임을 유료.


- 수평주의와 수직주의 : 수평운송노조와 수직운송조합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빈스토크의 양대 이념체계.  


- 사랑 : 존재 간의 결합과 분리과정에서 느껴지는 근원적 충족감, 혹은 박탈의 감정. 난방비를 부담할 수 없는 극빈층의 경우 단지 벽을 넘어 전해지는 옆방의 온기만으로도 극단적인 신뢰와 호의, 온정, 그리움 등의 감정을 느끼기도 함. "그것 사랑이었어."

 

 
5. 광장의 아미타불

광장의 아미타불은 형부가 기동대에서 관리하는 코끼리, 아미타브를 이르는 말. 빈스토크 사람이 아닌 형부가 비정규직 용역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시위 진압용 코끼리를 관리한다. 형부와 처제의 편지로 이뤄진 대화들. 은근 재치 있고, 슬프다.


6. 샤리아에 부합하는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이슬람 자본이 어쩌구~ 투입되고 주인공은 부동산 투기를 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ㅠ 전지구적 상황인데 어지러워서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다. 여튼 자본주의를 비꼬는 건 분명한 소설. 난 이건 덜 웃기더라.

 

 

***** 이인화 선생님이 책 뒤에 쓴 글이 걸작이다. 좋은 것만 발췌.


"6편의 단편들에서는 다양한 고통과 함께 다양한 희망 또한 눈부시게 명멸하단다. '타클라마칸 배달사고'에서는 사막에 추락한 뒤 국가권력에 의해 버려진 비정규직 비행기 조종사를 서로 얼굴도 모르는 수백만의 개인들이 사이버스페이스의 힘으로 연대한여 인공위성 영상 검색으로 살려낸다. '자연예찬'에서처럼 아무리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우리 존재의 어머니인 가이아, 지구의 생태적 모성을 지키고 싶은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처럼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개인의 행동력은 기술관료주의의 지배 권력을 압도한다. (중간생략) 배명훈의 알레고리들은 앞으로도 보다 따뜻해져서 현재의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과 함께 가슴 뭉클한 인간적 감동으로 확대되어가리라 생각한다."

 

******

배명훈 작가는 SF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썼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읽었다. 그런데 SF 중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단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일단 과학적 상상력이 많이 발휘되기는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사회적 소설인 것 같다. 작가라는 사람들은 배명훈처럼 세상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SF라 어려웠나, 소화가 덜 되는 딱딱하고 질긴 빵 먹은 기분. 그래도 후식으로 달콤하고 말랑한 푸딩이 있어서 다행이다.

 

 

- 2009년 7월 24일, 싸이월드 등록

- 2019년 10월 16일, 티스토리 이동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