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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도서관

거한 손님맞이, 그래서 굿 한판: 황석영, <손님>

by 사랑해,태진 2020. 1. 9.

황석영과 '손님'

황석영. 그는 한국에서 민족작가로 불린다. 쉼 없는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기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딱 한 번 방송프로그램에서 스스로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밝히던 그의 미소에 반한 적이 있을 뿐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최근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내 차지하고 있던 '개밥바라기별'도 아직 표지밖에 보지 못했다. '손님'은 그와 나의 첫 만남이다.

 

어떤 사람일까 참 궁금했는데, 역시 민족작가인데다 이야기꾼의 팔자를 타고난 모양이다. 북한이 고향인 목사 형제를 중심으로, 해방부터 6.25전쟁까지의 역사가 이야기와 버무려진다. 선도 악도 없는 공간, 어떤 상황 속에서 어리기만 했던 우리 민족의 과거가 소설 속에 푹 배어 있다. 참, 우리 역사가 그랬었지. 하마터면 잊고 지낼 뻔, 그래서 큰 잘못을 범할 뻔했다. '손님'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매개물이다.

 

반갑잖은 혹은 잘못 맞은 '손님'

손님. 주인이 아닌 방문한 자, 그래서 그 근원이 내부가 아닌 어떤 것들을 이르는 말이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정보와 자극들은 나를 성장시키기에 좋은 자양분이기 때문에 손님의 존재는 때로 고마운 것이다. 그러나 종종 내가 나로서 온전하지도 않은 채 손님의 뜻에 따르며 그에게 주인 자리를 내주는 자들을 보게 된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소설 '손님'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해방 전후 우리나라는 '기독교'와 '맑스주의'라는 손님을 맞게 된다. 일제의 지배를 겪으며 진정한 우리가 무엇인지도 정립하지 못했던 아픈 시절, 두 가지 엄청난 이념은 우리의 주인인양 행세하며 서로를 향해 날선 칼을 들이댔다. 딱히 대립할 이유가 없었지만 신탁통치와 한국전쟁 등을 거친 한국의 특수한 상황은 둘을 적으로 만들었다. '찬샘골'은 손님에 휘둘린 어리석은 주인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소설은 미국에 살고 있는 류요섭 목사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만나는 혼령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실시됐고, 지주층이 많았던 기독교 신자는 공산당과 대립하게 됐다. 소작농 등 하층의 삶을 살았던 주민들은 대부분 공산당에 가입하게 됐고, 류요섭과 그의 형은 이웃들과 적이 되고 만다. 기독교 신자에게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적이듯, 공산당에게는 당의 원칙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찬샘골 주민을 이렇게 갈라놓은 기독교와 맑스주의가 찬샘골 주민의 내부에서 우러나온 어떤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것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마마'같은 존재였으나 물리쳐지기는커녕 사람들의 정신 깊숙한 곳을 지배했다. 소설 속 소메삼촌의 말처럼 '그 때는 양쪽 모두가 어렸'기 때문이다. 신학문이 들어온 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그 손님들을 정면에 내세우고 우리 스스로가 갈라져 싸웠던 어리고 어리석은 역사의 단편이다.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손님>의 표지

적나라한 리얼리즘과 비감(悲感)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무엇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해낼 수 있는 몫은 그런 선명한 이미지 제시에 있다. 리얼리즘은 소설보다는 영화와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스팩터클한 이야기는 극장용 영화로 봐야 감동이 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손님'은 사진이나 영상 못지않은 이미지를 제시하는 글이다. 인물의 대화와 심리 서술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연결 사이에 엄청남 이미지를 제공한다. 가령 공산당의 인물을 끌고 가는 장면에서 코에 철사를 꽂는 장면, 길을 잃은 여군 둘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 등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마치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짧고 담백한 서술로 이만한 비감(悲感)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극의 상황과 각 인물들의 목소리가 버무려진 결과라 생각한다. 니 편도 내 편도 없고, 죽고 사는 것도 없었으며, 용서하고 회개하는 것도 없는 곳이었다는 그 날의 찬샘골. 그곳을 살았던, 지나왔던 각각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척 시렸다.

 

"삶은 놓친 시간과 그 흔적들의 축적이며 그것이 역사에 끼어들기도 하고 꿈처럼 일상 속에 흘러가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역사와 개인의 꿈같은 일상이 함께 현실 속에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요섭 목사를 쫓아가는 과정에는 혼령과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리얼리즘이란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엮어지는 삶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소설을 통해 역사와 개인의 일상은 동시에 흘러가며 그것이 오늘날로도 연결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얼개와 에너지 폭발점

'손님'은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해서 쓰인 글이라 한다. 굿판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고, 그들의 회상과 이야기도 제각각 넘나들도록 구성됐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라는 큰 씨줄을 놓고 등장인물이 각자의 서로 다른 삶의 입장과 체험을 조각조각 펼치고 하나의 사건을 모자이크처럼 총체화'하는 것이 소설의 구성안이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혹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인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신선했고, 등장인물이 각자의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은 긴장감을 선사했다. 8장, 류요한과 순남이 삼촌의 영혼을 필두로 그 날의 기억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장면에서는 에너지가 폭발했다. 조각조각 나눠졌던 이야기는 에너지 폭발을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됐고, 그를 통해 양 측은 신명나는 한풀이를 한 판 즐겼다.

 

바깥에서 온 손님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굿'을 통해 위로 받았다. 손님맞이 한번 거하게 했던 가련한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주인으로 당신들을 맞아주기, 그러기 위해 내가 나로서 온전해지기. 자꾸만 깜빡하는 역사를 일깨우는 동시에 교훈을 선사한 책 한 권이었다.

 

 

- 2009년 5월 9일, 싸이월드 등록

- 2020년 1월 10일, 티스토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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