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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에세이

[NES/미디어칼럼] 정직하고 친절한 언론

by 사랑해,태진 2019. 10. 16.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 진술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은 당신에게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당신은 죽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거짓을 꾸며내고 있다고 해도 그 결과는 같다"고 말했다. 결국 당신은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진실을 이야기했다면 진실 때문에, 살기 위해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유로 죽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PD수첩]의 줄기세포 관련 방송은 자신의 진술이 진실임을 선택했다. 그들은 공중의 알아야 할 권리를 최선으로 여겼고,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은 취재윤리라는 것을 어겼고, 진실보도라는 반짝이는 이름에 빛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PD수첩]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일지라도 미래의 언론인을 꿈꾸는 우리에겐 타산지석의 교훈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선택을 자세히 살펴보자.    

 
  사실의 공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공중의 알권리가 취재원의 기본권보다 우선될 수 있다. 불법탈세를 하는 사람들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여 방송한다면 그들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당하지만, 그것을 방송하지 않을 경우에는 공공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프라이버시권과 알권리 중 알권리가 우선하는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PD수첩]의 방송은 취재 과정에서 강압적인 태도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진실을 밝혀내는데 크게 공헌을 했으므로 취재원의 기본권보다 알권리를 우선시 하는 경우에 포함되어도 되는 것이다. 만약 [PD수첩]의 방송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과학과 언론은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윤리를 무시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부끄러움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황우석 박사에 대한 전 국민적인 여론을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친절하게 진실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온 나라에 자랑거리가 된 일의 윤리문제를 들추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진실을 추적해보았습니다'라는 결론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라는 화법을 선택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즈메디의 난자매매와 난자매매의 부작용, 헬싱키 선언의 위반 등의 구성보다는 기본적인 생명 윤리에 대한 설명과 헬싱키 선언에 대한 설명 후에 난자매매에 대한 내용들을 구성했더라면 진실은 지금보다 쉽고 빠르게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PD수첩]은 진실보도라는 훌륭한 덕목을 지켰다. 취재과정의 윤리위반은 잘못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가져 온 사회적 이익을 따져본다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중을 배려한 말하기 방식이다. 추적해서 폭로하는 진실이 아니라, 왜 그것이 진실인지 그것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언론이 그저 정직하기만 한 언론보다 낫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죽는 것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죽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다. [PD수첩]이 보여 준 정직한 용기를 가슴에 품고 진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언론인이 되는 일, 2006년 새해 목표라고 하면 너무 거대한 것일까?  

 

- 2006년 1월 Never Ending Story 미디어칼럼 원고

  (Never Ending Story는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02학번 동기신문으로 격주간 발행됨)

 

 

- 2006년 1월 25일, 싸이월드 등록

- 2019년 10월 16일 티스토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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