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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에세이

당신의 네비게이터

by 사랑해,태진 2019. 10. 16.

  "당신의 직업은?"

 

  인터넷 사이트 가입을 위해 개인정보를 입력할 때였다. 성명,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를 잘 써 내려가던 나를 잠시 멍하게 만든 단어 - 직업. 고민할 여지도 없이 "무직"이라고 쓰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졸업을 하였고, 현재 직장이 없으므로. 그런데 왠지 그렇게 쓰는 것이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고 언젠가 - 아니 빠른 시일 내에 그 꿈을 이룰 것인데, 현재 나를 표현할 때 "무직"이라고 써야한다니 이건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Alt + F4 - 작업종료였다. 사이트 가입을 포기하고 가만히 누워 나의 꿈과 미래, 그리고 현재의 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의 꿈은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꿈과 함께 한 미래는 달콤해 보였다. 그 달콤한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나는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해야 하는 것 이 셋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지금껏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이었다. 방송을 만드는 일이 하고 싶었고, 그것을 하려면 방송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론정보학과로 진학했고, 학과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열심히 했다. 공부도 좋았고, 사람도 좋았고, 비좁은 과방마저도 좋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의 꿈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파악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또 지금 꼭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저 남들이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는 나 - 내가 알고 있는 나도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위험한 상태의 내가 졸업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이외에는 아무런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제 내가 해야하는 것은 매순간 나를 파악하고 판단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영어도 해야 되고, 국어도 해야 되고, 글 쓰기 연습도 해야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나의 상태에 대한 파악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으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지각과 판단, 그것에 대한 파악. 그것이 현재의 내가 해야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가입한 사이트에 나의 직업은 "무직"이었다. 그러나 그 단어는 어제 쓰려던 무의미하고 의욕 없는 단어가 아니었다. "장래가 촉망되며 가능성이 아주 많은 무직" 이것이 내가 새로 쓴 무직의 의미이다. 나는 직업이 없으나 꿈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비록 현재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무직"뿐이라고 해도 이제는 억울해 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 대한 성찰을 했고, 그를 통해 좀 더 열심히 살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승리의 브이를 크게 그리는 날까지 파이팅하겠다.

 

  세상 모든 것에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현재 위치에 대한 지각과 판단. 그것은 앞으로 일을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지 혹은 최선의 대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길을 제시해 주는 훌륭한 네비게이터가 된다. 누구나 한 번 밖에 걸을 수 없는 인생이라는 초행길에서 겨우 20년 동안 달려 온 우리에게 친절한 네비게이터 하나는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나 내 인생이 걱정될 때 다음의 세 가지를 따져 보는 것은 어떨까? -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해야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당신의 마음을 다잡는 괜찮은 응급처치가 될지도 모른다.

 

- 2005년 충남대 언론정보학술지 게재 칼럼

 

 

- 2005년 9월 20일 싸이월드 등록

- 2019년 10월 16일 티스토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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