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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영화관

반가운 '괴물' 강추! 드디어 봉 감독의 <괴물>

by 사랑해,태진 2020. 3. 19.

반가운 <괴물>, 강추

 

  드디어 봉 감독의 '괴물'을 만났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에게 딸을 납치 당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괴수영화'. 이 영화는 뜰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블록버스터라는 스케일, 봉준호 감독, 송강호·박해일·변희봉·배두나라는 화려한 출연진, '칸 영화제'에서의 극찬 등 작은 영화들이 가질 수 없는 경쟁력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인도한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극장의 스크린 대다수를 점령하고 있는 꼴을 보면 어쩐지 '영화도 돈이 만든다'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나기 일쑤지만 봉 감독의 '괴물'만은 반가웠다. 그의 영화는 '태풍'이나 '한반도'와는 확실히 다른 무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영화들에서 그릴 수 있는 세세한 연출과 감동, 봉 감독은 그것을 절대 빼놓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속으로 '봉 감독 만세'를 외치다 왔다. 


1. 기막힌 설정과 캐릭터

- 매점

  주인공 박강두 가족은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한다. '매점'은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한강을 부각시키는 존재이다. 빈손으로 한강에 나가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것은 '매점'이 제공하는 온갖 먹을거리와 휴대용품들 때문이다. 한강이 늘 서울 시민들 곁에 있듯 매점도 늘 한강 곁에서 그것을 보조하고 있다. 괴물의 등장으로 딸을 빼앗긴 후의 '매점'은 박강두 가족의 본부가 된다. 그 곳에는 식량이 있었고, 휴식이 있었으며, 가족이 있었다. '매점' 주인이기 때문에 괴물에게 습격 당했지만, 괴물을 공격할 본부를 미리부터 갖추고 있다. 그래서 '매점'이라는 것이 필연적이며 기막힌 공간이다.

<괴물> 가족들이 운영하는 매점의 모습. 박강두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 박희봉 할아버지

  한국에서 59년 동안 살아오신 현서의 할아버지. 매점을 운영하며 엄마 없이 3남매를 길렀다.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했던 부모님 세대인 그가 살아 온 세상은 '권력자에게 돈을 찔러주며 사정하는 것이 최고'인 곳이었다. 박강두가 딸이 살아있다고 주장해 정신병자 취급당할 때도, 방역차를 타고 한강으로 다시 들어갈 때도 그는 한 번만 봐달라는 웃음으로 그들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준다. '좋은 게 좋은 것인' 한국인의 정서, 그래서 힘없는 자는 늘 슬플 수밖에 없는 한국, 할아버지의 얼굴을 통해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했던 한국의 가련한 가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박강두 아버지

  무식하고 무능한 현서의 아빠. 박강두는 시도 때도 없이 졸고, 오징어 다리를 9개로 구워 팔며, 중학생인 딸에게 맥주를 권하지만, 딸의 가방이 무거울까봐 뒤에서 들어주고, 그녀의 새 핸드폰을 위해 동전을 모으는 착한 아버지이다. 딸이 세상에서 최고인 그는 가진 것이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우리의 소시민과 닮았다. 그와 미군 장교가 처음 등장한 괴물에 맞써 싸웠지만, 정부와 언론은 미군 장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박강두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다. 실험실에 갇힌 그를 두고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에게 그가 외친 "내 말도 좀 들으라고"는 정부에게 외치는 시민들의 고함이 아닐까.        

왼쪽부터 할아버지 박희봉 역에 변희봉 배우, 아버지 박강식 역에 송강호 배우, 삼촌 박남일 역에 박해일 배우의 모습. 연기파 배우가 한 자리에 모여 장면마다 눈 떼기 어려운 영화다.


- 박남일 삼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한 몸 바쳤으나 조국이 취직시켜 주지 않은' 현서의 삼촌. 그는 이 시대 가련한 20대들의 대표이다. 대학을 나와야만 인간 대접받을 수 있는 한국, 열심히 공부해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나 그에겐 '청년실업'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술로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세상에 대한 욕이 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대학은 현서의 위치를 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기적인 대학 동료들이지만 이미 한국은 그들로 채워져 있다.   


- 박남주 고모

  양궁 선수인 현서의 고모. 양궁 선수라는 그녀의 직업은 정말 기막힌 설정이다. 괴물을 공격할 수 있는 적당한 무기와 능력, 그녀의 역할은 처음부터 괴물을 무찌르는 것이었다. 여자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손에 쥐고 영화를 시작한다는 것, 감독은 어쩌면 '여성성'의 희망을 박남주에게 부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박남주 역할을 맡은 배두나 배우의 모습

- 박현서 딸

  괴물에게 납치되는 존재로 이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괴물에게 잡혀가서도 죽지 않은 평범한 여중생은 휴대폰으로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침착함을 지녔다. 하수구로 오자마자 죽어버린 나약한 어른과 달리 몇날 며칠을 살아냈고, 후에 잡혀 온 아이에게는 보호자의 존재가 된다. 남자도 성인도 아닌 박현서는 괴물의 공포를 견뎠고 마침내 한 생명을 살리게 된다. 언제나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성인 남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당찬 영혼은 세상의 편견처럼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2. 여성성의 재발견

 

<괴물>에서 큰 축을 담당한 고아성 배우의 모습. 여성의 가지는 가능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괴물'의 두 여주인공, 박남주와 박현서는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졌던 여성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들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미인이 아니며,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도 아니다. 박남주는 괴물과 싸우기 위한 '전사'였으며 다른 가족과 동등한 위치에서 큰 역할을 한다. 박현서 역시 납치된 즉시 죽어버리거나 울기만 하는 약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아이를 보호해주는 '모성'을 보여준다. '전사'와 '모성', 두 가지는 '괴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성의 재발견이다. 약자와 보조자의 위치가 아닌 주역의 자리에 있는 여성. 그들과 함께 할 때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는 세상이라면 그 어떤 괴물이 두려우랴? 박남주와 박현서는 우리에게 그런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3. 사회의 거울


  괴물은 미군기지에서 함부로 흘려버린 독극물에서 출발한다. 연구실의 먼지는 문제가 되고 한강의 독극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미군의 사고방식은 현재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방식을 투사하고 있다. 괴물을 존재는 몸의 일부가 없어진 채 발견된 시체를 통해 암시된다. 시체의 주인은 한강에 투신 자살한 중년 남자. 중년층의 자살을 괴물의 암시로 연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러기아빠, 사오정 등으로 대표되는 중년층의 붕괴를 한국의 위기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쫓고 사회의 부패를 견제해야 할 언론은 어느새 보도경쟁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앞에서 시민들은 절망한다.

  괴물이 등장한 후 보여지는 정부의 대응, '진실'보다는 '보도'에 치중한 언론, 보도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현재 한국 정부의 무능함과 언론의 잘못, 국민의 우둔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제만 생기면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정부, 통곡하는 가족에게 셔터를 들이대는 기자, 초기 감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한 발짝 떨어지는 사람들, 이 장면들이 쉽게 웃기만 할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매점서리'를 하는 고아들에게 는 괴물보다도 배고픔이 훨씬 두려운 것이었다. 폐쇄된 한강 매점에 있는 '먹을거리'만 챙긴 아이가 제일 먹고 싶었던 고작 천하장사 소시지, 바나나 우유, 통닭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존재하는 '다른 괴물'에게 가려진 2000년대 한국의 사생아들이었다.                  

 
4. 가족


  딸을 괴물에게 납치 당한 박강두 가족을 도와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 사회가 돈과 빽이 없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줄 만큼 성숙한 곳이 아님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서에 대한 사랑을 빽 삼고 자기의 '전공'을 무기 삼아 결국 괴물을 무찌른다.  할아버지는 몸을 던져 자식들을 지켜내고, 삼촌은 조국의 민주화 대신 현서를 위해 화염병을 던진다. 고모는 불화살을 괴물에게 명중시키며, 아버지는 괴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서양의 괴수영화들처럼 작전 회의는 필요 없다. 가족은 언제나 가족의 편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텔레파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루한 할아버지도, 어수룩한 형도, 싸가지 없는 삼촌도, 결단력 부족한 고모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편이 되어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다. 진정한 가족애란 겉으로 보여지는 간지러운 말과 행동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믿음에서 비롯된다. 말로는 절대 표현하지 않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뜨거운 것이 바로 괴물을 물리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가족!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유독 화목한 가족이 많이 보인다. 세상이 모두 나를 배신한대도 꼭 하나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지. 가족이 가진 힘이라는 건 감히 짐작도 못할 정도로 위대하니까.

5. 화염병과 활


  1980년대 대학생들의 데모 도구 중의 하나인 화염병, 괴물을 물리치는 도구로 이것이 등장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독재정부를 표적으로 날아가던 것이 이제는 괴물을 향한다. 화염병을 맞고 있는 괴물은 독재정부 이후로도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는 한국의 정치인 것이다. 혹은 독재정부만큼 국민을 위협하는 새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정의를 위해 날아가던 '화염병'의 등장은 다시 한국의 정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함을 암시한다.

 

삼촌 박남일은 화염병을 들고 괴물에 맞선다.

  괴물을 명중시키던 박남주의 '활'은 첫 번째 공격에서 실패한 '총'과 대비되는 소재이다. 활은 서양에서 들어온 무기가 아니라 고구려부터 존재한 우리의 무기이다. 괴물의 눈에 명중하는 불화살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화학무기처럼 부작용을 수반하지 않고도 표적만 명중시킬 수 있는 명쾌한 활. 괴물의 존재가 무엇이든 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해결할 때 가장 완벽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6. 밥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라고도 한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병원을 탈출한 가족이 매점에서 밥을 먹는 장면은 그런 '식구'의 의미를 잘 표현해 준다. 없어야 하는 박현서도 나타나서 아버지와 고모가 먹여주는 것들을 맛있게 받아먹었으니까. 여기서 '밥'은 함께 먹고 먹여주고 그렇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기에 적절한 장치가 된다. 괴물을 물리친 박강두는 두 명의 식구를 잃어버리고 대신 그는 딸이 끝까지 지켰던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다. 곤히 자던 아이는 "밥 먹자!"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밥 먹는데 집중하자며 열심히 숟가락질을 한다. 다시 식구가 하나 늘어난 것이다. '함께 밥 먹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괴물과의 싸움은 '함께 밥 먹을 아이'를 남기고 끝이 났다. 

 
  기막힌 설정과 캐릭터로부터 시작되는 탄탄한 이야기, 장면에 꼭 맞는 쫄깃한 대사, 배우들의 연기력, 영화 장치들의 상징성 등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여러 가지이다. 한 가족의 비극이라고 영화를 봐도 좋을 것이고, 우리 사회에 있는 적을 미리 상정하고 영화를 보러가도 좋을 것이다. 기존의 블록버스터가 놓치기 쉬운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쓴 봉 감독의 노력을 하나씩 찾게 되는 순간마다 속으로 '봉 감독 만세'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2시간 짜리 영화 한 편으로 이틀은 즐거울 수 있는 영화, 봉준호의 '괴물'을 강력히 추천한다.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작품 <괴물>의 포스터

 

2006년 8월 1일 싸이월드 등록

2020년 3월 20일 티스토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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