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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도서관

[문예위 독후감] 핑. 퐁. 핑. 퐁 - 속죄하는 마음으로

by 사랑해,태진 2010. 6. 14.

   그렁그렁, 크지도 않은 눈망울에 커다란 물방울이 고였다. 펑펑, 흘러내리지 않고, 그렁그렁 고드름처럼 매달려만 있다. ‘못’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60억 인류를 생각하면서, 지구의 미래를 위한 ‘언인스톨’을 떠올리면서, 울고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흘려버릴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 그렇게 담담하게 흘러가는 문체, 그리고 박민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나를, 인류를, 지구를 정말로 ‘언인스톨’할 때가 되었거나 박민규가 천재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왕따와, 인류와, 지구와, 탁구의 이야기 - 내가 당신들을 만난 것에 감사드린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왕따라면 내 주위에도 있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이 특별한 인간의 눈 밖에 나 특별하게 정신적으로 다쳤던 아이. 그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두려웠다. 다수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닐지, 함께 왕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모두와 친구가 되는 것, 그래서 아무와도 친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다수인 척 할 수 있었고, 항상 소수의 곁에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아니 사악한 것이었다.
 
  용감하지 못했던 나를 돌이켜 보며 ‘못’과 ‘모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또 말한다. 그 때 나와 그 아이에게도 탁구라는 것이 있었다면, ‘핑퐁’ 대화의 틀을 이용해 소통할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덜 사악했을 것이고, 그는 좀 더 든든하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정말 미안해’라는 핑을 날리면 ‘괜찮아’라는 퐁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비겁하고 비열한 나에게 손 내밀어 준 그에게 ‘고마워’라고 핑, 가면 속에서 스스로 왕따하고 있었던 나에게 ‘괜찮아’라고 퐁, 혼자라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친다.
 
  왕따에게 주어진 탁구, 그것은 썩 괜찮은 위로다. 가볍고 작은 공은 자신감을 주며, 격하게 부딪치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날리는 게임 방식은 그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몸이 슬슬 풀리고 호흡이 맞춰지면 ‘핑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그 옛날 미국과 중국마저 그랬던 것처럼. 핑퐁-작지만 밝게 빛나는 공을 통해서 작가는 왕따를 위로하고 싶었던 게다. 차라리 못이면 좋겠다던 ‘못’에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게다. 그래서 못과 모아이도 핑. 퐁. 핑. 퐁. 탁구를 친다.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나도 종종 한다. '아무리 괜찮아 잘 될 거야 나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도, 잘 될 것 같은 미래나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명품으로 치장을 한 발랄한 부익부와 굶주림으로 밥을 먹는 흐릿한 빈익빈의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권을 가진다던 사회 교과서의 구절들은 그저 성경 말씀이 된 요즘, 차라리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나에게 세상은 누구나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배울 수 있고, 치료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꿈을 꽃 피울 수 있는 곳,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여기는 그런 곳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제도권 교육을 마치고 세상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부익부가 아니면 빈익빈이 되는 세상을 내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열심히 핑. 퐁. 핑. 퐁. 탁구공을 날려보아도 부지런히 핑. 퐁. 핑. 퐁. 탁구공은 돌아오므로, 세계는 듀스 포인트로 변하지 않고 주욱 부익부 빈익빈으로 달려온 것을 모르고 말이다.
 

  9볼트짜리 해악을 가진 인간들이, 매수당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왜 사는지도 모른 채 던져진 지구라는 공간은 과연 괜찮지 않은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못’과 ‘모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노인은 매수당하기를 기대하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다수인 척 노력하고, 대부분의 인류는 왜 사는지조차 모르며 살아간다. 그러니 ‘핼리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혜성을 기다리는 간절함만큼 세계는 부패했으니 역시 듀스 포인트다.

    그렇다면 선택은 한 가지, 지금껏 지구를 지배해왔던 거대한 시스템을 제거하는 것이다. 선택권은 지금껏 소외되었던, 배제되었던,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못’과 ‘모아이’에게 있다. ‘지금 이대로, 변함없이’를 선택할 만큼 부패하지 않은 중학생 둘은 언인스톨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서서히 언인스톨되고 있다.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인류 또한 사라질 것이다.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진행된 지구 온난화,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인한 기상 이변은 그 작은 증거들이며, 인류가 지금 이대로, 변함없는 태도로 세계를 일궈나간다면 그 진행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잘 된 일이라고, 인류가 뿌린 씨를 거두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려니 미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미련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혹시 언인스톨에 반대하거나 지금 이대로의 세계에 애정이 있는 인류가 있다면, 누구라도, 이제라도,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다시 ‘못’과 같은 아이가 나타나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며 울지 않도록.

2007년 상반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했던 '제8회 우수도서독후감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글이다. 지금은 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싶기는 하지만. 그 때 수상평에 "「핑, 퐁, 핑, 퐁 - 속죄하는 마음으로」(달려라 하니)는 박민규의 소설을 자기 세대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읽어냈지만 그 깊이가 충분히 확보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솔직담백한 이야기 전개에 점수를 주었다. "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시 내 눈엔 깊이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는 것만 들어왔는데 이제는 자기 세대의 방식으로 재밌게 읽어 냈다는 게 보인다. / 파란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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