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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 Reporter/기자의 눈

고맙다, 문화재 보존과학(2012.04.04.)

by 사랑해,태진 2012. 4. 4.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오래된 전차가 한 대 있다. 그 앞에는 전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학생과 배웅하는 가족의 모습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근대로 막 접어든 우리나라의 한 풍경인 것이다. 


필자는 그 앞을 지나며 전차를 볼 때마다 ‘그저 잘 만든 모형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깨끗하게 페인트칠도 돼 있고, 보존상태도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 갔다가 그 전차가 일제시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실제로 운행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됐다. 

등록문화재 467호로 지정된 ‘전차 381호’는 1930년경 일본 나고야에 있는 일본차량제조주식회사에서 만들어져, 1968년 11월까지 서울 시내를 다녔다 한다. 지난 2009년 서울역사박물관이 인수해 보존처리 후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보존과학과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은 2009년 보존처리 당시 도색작업을 위해 벗겨낸 페인트를 분석해 1900년대 사용한 도료를 밝혀냈다. 이를 통해 당시 도료 성분과 여러 번 덧칠을 했다는 것도 알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신기했지만, 보도하기는 솔직히 어렵다는 것이 당시 판단이었다. 숭례문이나 동대문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연구 결과를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회에서 만난 강형태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회장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수십 개의 연구결과가 담긴 책자를 보이며 그 의미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연구 결과”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근대 문화재에 대한 연구에도 한 발 다가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는 것 같았다.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1961년 한국전쟁 이후 훼손된 숭례문을 해체 수리한 과정을 담은 보고서에는 “해체 수리 당시 숭례문 목부재 일부를 악기 등을 만드는 데 기증했다”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당시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땅에서 나무를 구하기는 어려웠고, 공사 후 남은 목재를 재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내린 판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복원된 광화문도 콘크리트로 복원한 적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시 문화재 복원이나 보존에 대한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랬던 우리나라에 어느새 ‘문화재 보존과학’이라는 분야가 든든하게 자리를 잡았다. 각종 유물과 유적지의 연대를 밝히고 당시 사회문화상을 살펴보는 고고학과 역사학부터, 물질의 성분을 분석하는 화학과 문화재 구조적 특징과 재료의 성질을 연구하는 건축공학, 지질연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지구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돼 과거를 복원하고 있다. 

지난 해부터는 중학교 과학2 교과서에 ‘문화재 과학적 분석’ 내용이 실렸다. 숭례문을 받치고 있던 목재를 악기 만드는 데 기증했던 시대에서 근대 전차의 페인트칠까지 연구하는 시대까지 왔다.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 역사의 빈 부분을 과학적으로 찾아내고, 찾아낸 과거를 소중하게 지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과학기술이다. 이 분야가 고유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성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밝혀주는 고마운 문화재 보존과학과 관련 연구자들이 앞으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하길 기대한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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