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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Factory/영화관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 <라디오스타>

by 사랑해,태진 2010. 6. 8.
우리는 모두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최고가 되어야 하고, 그러면 더 큰 것을 이루어 세상에 중심에 서고자 한다. 남보다 멋지고 훌륭한 삶을 살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하류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설령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앉아 창백한 인생을 살게 되더라도, 보다 낮은 자리로 돌아가면 소박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말이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더라도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서울은 일종의 자존심이다. 그 욕망과 자존심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라디오스']다. 번쩍거리는 '중심인'인 대신 이도 저도 아닌
'주변인'이 만드는 은은한 울림, 그것이 '라디오스타'다.

88년도 가수왕 최곤, 이름에 '최고'를 품고 있는 그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인물이다. 그의 주변에는 늘 매니저 박민수가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88년을 자존심으로 삼고 다시 한번 그 자리에 오르기를 욕망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자존심을 같잖게 여기고, 그들의 욕망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최곤의 자존심이 사고를 치던 날, 둘은 지방방송국 DJ가 되어야 했다. 스스로는 언제나 가수왕인 최곤에게 서울을 떠나 노래 대신 라디오 진행을 하는 것은 분명 추락을 의미한다. 현실과 괴리된 자의식이 현실과 맞부딪쳐야 하는 순간이 오고만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간 그 곳에 이런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미래의 땅, 영월'.

현재의 한국을 사는 사람에게 미래의 땅은 서울이다. 젊음이 있고, 꿈이 있고, 치열한 삶이 있는 화려한 도시, 서울. 중심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을 갈망한다. 그래서 모두들 서울에 '가지' 않고 '올라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꾸로 서울에서 영월로 '내려'왔건만 '미래의 땅'이라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조그맣고 조용하고 뭐든지 천천히 흘러갈 것 같은 도시, 영월. 이곳이 미래의 땅인 이유는 최곤의 라디오 방송과 함께 밝혀진다. 오직 영월에만 방송되는 전파에 영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다방 종업원, 세탁소 주인, 청년백수, 고스톱 할머니 등 늘 주변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모두 영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서울에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극중 록밴드, Easrriver는 그 중심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해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방송이 인기를 얻자 최곤에게 다시 중심이 될 기회가 온다. 그를 위해 조용히 물러서는 박민수는 최곤에게 이야기한다.
'별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없다. 모두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그렇다. 세상 무엇도 혼자서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한다. 주변이나 중심이나 하나의 별로서 다른 별을 비춰주며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을 비춰줄 박민수가 없으면 빛나지 못하는 것을 깨달은 최곤이라는 별은 계속해서 미래의 땅을 비추기로 한다. 김밥장수 할거라며 꾸역꾸역 눈물 젖은 김밥을 삼키던 박민수도 커다란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나타나 최곤의 머리에 우산을 씌워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주변인으로서 반짝반짝 빛난다.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서 매니저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렇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번쩍이는 스타 뒤에서 한결같이 그들의 비춰주는 매니저, 끝까지 주변인을 끌어안고 보듬는 감독의 배려가 반짝반짝 빛난다. '곤아, 동강은 동쪽에서 시작해서 동강이냐, 동쪽으로 흘러가서 동강이냐?' 민수의 엉뚱한 질문 속에 감독이 숨겨둔 진리가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것은 동강이므로, 어떤 운명을 타고났든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 당신은 당신으로서 중심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중심임을 잊지 말기를,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기를 귀에다 은은하게 울려주는 '라디오스타', 그것은 주변인이되 결코 주변인이 아닌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라디오스타'를 보고 극장을 나왔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방 소도시에서 혼자 꾸던 내 꿈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지방이 중심이 아닐 이유가 없잖은가! 이 영화 덕에 난 주변인이 아니라 주인공이 됐다. 주변이 중심이 될 때까지, 꼿꼿하게 살겠다. /파란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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