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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 Reporter/기자의 눈

국과위의 100분 ’토의‘를 바라보며(2012.10.04.)

by 사랑해,태진 2012. 10. 4.

손석희 교수의 칼 같은 진행으로 유명해진 ‘MBC 100분 토론’. 이제 손 교수 대신 다른 사회자가 진행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주는 토론의 묘미는 여전하다. 


시청자들은 토론을 통해 주요한 사회문제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꼼꼼히 듣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거나 반박의 근거를 찾는다. 토론은 본디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하나의 해결책을 찾는 ‘토의’와 다르므로 토론을 바라보는 청중은 참가자가 세우는 견고한 논리를 지켜보는 데서 재미와 가치를 찾는다.

과학기술계에도 이와 유사한 토론회가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다. 올해 4월 23일 처음 시작한 이 토론회는 지난달까지 모두 여섯 번 열렸다. 과학기술 각 분야 이슈를 토론의 형태로 다뤄 대중의 관심을 끌고, 향후 정책에도 반영하겠다는 게 행사의 취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는 갈수록 박진감이 떨어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듯하다. 워낙 딱딱한 정책 분야 토론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토론의 기본 조건을 지키지 않아서라는 생각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토론은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나뉘는 주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근거를 들어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말하기’로 정의된다. 주제는 긍정과 부정의 입장을 취할 수 있어야 하며, 토론자는 찬성과 반대의 분명한 의견을 지녀야 한다. 사회자가 토론을 공정하게 진행하며 토론자의 발언시간이나 순서 등을 공정하게 정한 규칙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정의에 맞춰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를 바라보자. 우선 주제 선정부터 토론이라 하기 어렵다. ‘정부와 민간의 R&D 투자,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1회)’, ‘한국형 발사체, 앞으로 가야할 길은?(3회)’, ‘에너지 분야 R&D 전략(4~6회)’ 등은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서 주장을 펼친다기보다 하나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토의’의 형태에 가깝다. 그나마 2회 주제였던 ‘대형 가속기 필요한가?’로 유일하게 찬반을 나눠 논쟁할 수 있다. 

4회부터 6회까지는 ‘에너지 분야 R&D 전략’을 3회로 나눠 에너지 확보와 향후 과제, 신재생에너지, 원자력 등을 두루 다뤘는데, 이 행사는 그야말로 토의의 장이었다. 세부 주제로 등장한 것들도 모두 전문가들이 해법을 찾아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각 전문가들이 발표한 해법들을 한 방향으로 모아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토론의 형태를 취한 모양이다. 문제는 토의 주제를 내놓고 토론처럼 진행하다보니 토론 본연의 논리 전개를 보는 맛도 없고, 토의처럼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도 못했다는 데 있다. 

토론이나 토의,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게 아니다. 각자의 말하기 형태는 고유한 목적이 있다. 애초에 국과위가 토론의 형태를 취한 이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토의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과위 100분 토론회는 이름만 토론일 뿐 정작 내용은 정책토의의 장에 가깝다. 토론의 기본을 지켰더라면 지금처럼 과학기술 100분 ‘토의’회가 아닌 재미있는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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