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봄바람 휘날리는 사월 하순, 서른 살 먹은 여자 셋이 전남 화순군으로 향했다. 소규모로 편백나무 도마를 제작해준다는 목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도마를 굳이 만들어서 써야했는가 하면, 그렇다. 셋 중 두 사람이 이 도마를 차기 사업 아이템으로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둘 중 한 사람이 내 지인이라 운 좋게 그들과 동행할 수 있었다. 마침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앞날을 고민하던 내게 머리도 식히고 바람도 쐬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사실 지금껏 살면서 도마를 중요하게 여긴 적이 없다. 도마는 그저 음식을 썰 때 적당히 받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피톤치드가 나오는 편백나무 도마가 궁금하기도 했고, 직접 목수를 만나 시제품을 부탁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는 것만 돈벌이로 생각했던 내게 직접 사업을 꾸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갑이지만 나는 어린이고 그들은 어른인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생각했다. 산골에 태어나 분교에서 배운, 늘 촌놈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가난한 아이, ‘지방대가 뭐 어때서?’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 꼬리표가 이롭지 않다는 걸 깨달은 상처받은 청춘, 꿈과 멀어지지 않으려 아득바득 취직했지만 세련된 구별 짓기에 튕겨나간 영혼. 그렇게 온몸으로 상처받고 사느라 아직 어른이 못 된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벌써 저만치나 어른이 된 건 아닐까. 괜한 상념에 어깨가 축 처질 즈음 화순에 도착했다. 

4시간여 달려온 길이 시간터널이라도 되는지 서울과 다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우릴 맞았다. 목공소 문이 열리자 톱밥과 먼지가 안개처럼 자욱했고 그 안에서 나타난 목수 둘은 우주비행사 같았다. 압축공기로 온몸을 씻어낸 우주비행사 아니, 목수들은 봉지 커피를 진하게 태운 따끈한 커피 5잔을 내왔다. 은근한 전라도 사투리가 간간이 섞인 회의가 시작됐다. 들러리로 따라붙은 내게도 정답게 말붙여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편백나무 도마의 크기와 수량, 목재 단가, 디자인 등에 대해 의논하던 중 한 장면이 나를 사로잡았다. 

양면 모두를 옹이가 없는 나무로 만들면 안 될까요?”

, 그라믄 단가가 좀 더 올라가요. 옹이가 읎는 게 무절인데, 그건 귀하거든요.”

왜요? 옹이는 상처 아닌가요? 나무에 상처가 그렇게 많아요?”

, 나무 한 통을 자르면 무절은 한두 개 겨우 나와요. 잘라보믄 살았는 옹이도 있고, 죽어서 무늬가 된 옹이도 있거든요.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읎어요.” 

멜빵바지를 입고 한쪽 귀에 연필을 꽂은, 서글서글한 표정의 목수 아저씨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옹이라는 게 나무가 위로 길게 자라면서 아랫부분에 죽어버린 가지들을 큰 줄기 안에 묻고 가느라 생긴 것이고, 그 바람에 무늬도 생긴다고 말이다. 죽은 가지들이 아직 줄기 속에서 완전히 묻히지 못한 걸 살아있는 옹이라고 부르는데, 목재 한 쪽에 딱지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옹이는 죽은 옹이인데 큰 줄기와 다른 방향으로 동심원을 만들어 목재에 새로운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눈 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만 특별히 아프고 다치며 여기까지 왔다고 탄식했던 좀 전에 내가 떠올라서다. 나무 하나도 상처 없이 자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싶었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큰 기둥 속에 푹 감싸고 기다리는 나무의 성장을 떠올리자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미 죽은 옹이가 되고도 남았을 약점만 들여다 본 셈이니 말이다. 

어린 나무는 장성하기 위해 잔가지를 버린다. 그리고 그 아픔을 줄기 속에 흔적으로 남겨둔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는 굳이 헤집지 않고 딱지 앉은 그대로 품는다. 그것을 이겨낼 즈음엔 큰 줄기의 무늬 속에 어우러지는 예쁜 무늬가 탄생한다. 그렇게 아프면서 크고 시간에 맡기면서 성장하는 게 나무의 삶이다. 그래서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대신 양면이 매끈한 목재를 얻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상처를 구석구석 안고 자라면 그만큼 쓸모가 많아진다. 사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만큼 알차게 성장한다. 상처가 많다는 건 어쩌면 다른 이보다 더 굵은 재목으로 자랐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편백나무 도마 시제품이 제작돼 선물 받던 날,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던 목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힘에 부치는 일이 생기면 도마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다시 백수가 된 서른 살 가난한 청춘이지만 내겐 지금껏 다져진 마음 속 옹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시나브로 쌓였던 마음 속 옹이만큼 나무줄기가 굵어져 어딜 가도 괜찮은 재목으로 쓰일 만큼 성장했다. 자신감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옹이에서 많이 나온다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처럼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줄 나를 상상해본다.

<PAPER> 2013년 12월호 '페이퍼 문예상'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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